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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이야기

 

20년도 훨씬 지난 시간, 저희 가족이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는 현지 선교부 MEN(Mission to Every Nation)에 일손이 모자라 교회 사역을 감당할 선교사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목회 사역이 주어졌고 모르면 용감하듯 덜컥 맡았습니다. 당시 나는 설교와 목회는 커녕 혼자서 온전한 생활이 어려운 문화적 신생아였습니다. 어눌한 영어, 인사말 수준의 부족어, 혼자서 운전하거나 시장보기도 어색한 시절이었지요.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사역을 시작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유능한 현지인 동역자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통역을 비롯, 목회를 함께 수종들 분으로 당시 신학교에 재학중이던 리차드 르완가(Richard Lwanga) 목사님을 소개 받았습니다(우간다에서는 신학공부를 시작하면 pastor로 호칭합니다). 리차드 목사님은 저의 짧은 영어 설교를 예화까지 곁들여 풍성하게 통역하여 설교자 체면을 세워주었습니다. 영력은 물론, 성도를 섬기는 따뜻한 마음, 겸손함, 체력, 언어 구사력이 뛰어났으며, 토요일 물 청소, 예배 준비와 기도회, 성경공부, 신학 공부 틈을 쪼개 심방과 전도 등, 여러 면에서 모범 된 사역자였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프리카 사람 가운데 드물게 노래나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여러 번 키(key)가 바뀌는 찬양 시간은 특별한 인내심이 필요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외에는 재주나 은사가 많은 분이셨지요. 첫 사역에 복된 동역자를 만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어느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우기에 접어든 때라 새벽부터 축복의 장대비가 풍성하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지요. 나는 찬송을 흥얼거리며 예배 시간보다 이르게 예배당으로 향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비는 축복의 상징이기에 비와 함께 걷는 걸음이 싱그럽고 즐거웠습니다.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장화에 우산, 더군다나 커다란 밀짚 모자까지 쓰고 있어 이동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왁자지껄한 거룩한 소음으로 그득차 있어야 할 예배당에는 인적 없는 정적과 냉기로 가득했습니다. 순간 주일 아닌가?’ 급하게 요일을 확인했지만 불행하게도 정확하게 주일, 예배 시작 15분 전이었습니다. 당혹감과 함께 리차드 목사님은 어디에 있나?’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가 와서 성도들이 늦는 것은 이해되지만 사역자조차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아픈가?, 급한 일로 집에 갔나?, 그래도 그렇지 아무 연락도 없이…’ 온갖 상상과 당황함으로 헐레벌떡 리차드 목사님의 기숙사 방을 찾아갔습니다(당시 예배당, 신학교, 기숙사, 선교사 사택 등이 모두 같은 울타리에 있었습니다). 이 상황이 설명되려면 리차드 목사님은 기숙사에 없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리차드 목사님은 너무나 반갑게 나를 맞았습니다. 막 깨어난 부시시한 얼굴과 잠자던 옷차림으로 말입니다. ‘이 목사님이 늦잠을? 그럴 리가 없는데…’ 주일이면 이른 아침부터 활기찬 얼굴로 반갑게 성도들을 맞았기에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끓어오르는 노기를 애써 누르며 거친 숨과 함께 토막 말이 쏟아졌습니다. ‘지금 몇 시, 예배 시간, 아직 잠옷, 몸 불편, 무슨 일?’ 목소리는 떨렸고, 가슴은 더 떨렸습니다. 예배 시작 시간은 이미 지났고 나는 패닉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예배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불경죄, 죄의식이 온 몸을 지배했습니다. 예배 시간을 지키지 못하다니,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뵈올꼬하늘이 노랬고 다리는 후들거렸습니다

 

그런데 신실한 사역자 리차드 목사님은 노기어린 담임목사의 질문에 차분하면서도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최 목사님, 비가 오지 않습니까…(Rev. Choi, it’s raining)” ? 그래서? 비가 오지! 그렇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한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몰라? 이가 맞지 않고 기승전결 논리가 사라진 대화는 좌 우뇌를 지나 전두엽을 휘몰다가 상처와 함께 가슴에 자리잡았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리차드 목사님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랜 세월 아프리카에서는 비가 오면 학교도, 관공서도, 교통 기관도 업무를 보지 않거나 연기되었습니다. 물론 예배도 자연스럽게 연기되지요(서양 문화 영향을 받은 도시 지역은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우산이나 장화 같이 비에 맞서는 이동 수단이 여의치 않은 점도 있지만, 자연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문화적 습성이 생활로 굳어진 것이지요.

 

한국에서 신앙 좋은 성도를 소개할 때, 의례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가 빠지지 않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배에 빠지지 않으시고는 목사님이 믿음 좋은 장로님, 권사님 소개할 때 등장하는 단골 수식어입니다. 한참 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종을 치시고라는 멘트도 있었네요.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는 한결같은 마음과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른 도전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답니다. 비가 오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고 자연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아프리카지요.

 

선교사 후보생 시절, ‘문화충격(culture shock)’이라는 단어를 수 없이 듣고 사례도 공부 했었지만, 체득되기까지는 너무나 먼 개념이었나 봅니다. 옳고 그름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흔들리는, 말로만 듣던 문화충격을 몸소 겪고 한 동안 힘들었습니다. 최근, 시작 시간을 countdown하며 친절하게 대형 화면에 띄워주는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예배 인도자는 정말 거짓말처럼 ‘…3, 2, 1’ 이후에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멘트를 쏟아냈습니다. 저녁 9시 뉴스 같았지요.^^

 

하나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을 같이 지키는 예배를 기뻐하실까요?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순연되는 예배를 기뻐하실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문화 문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문화 방랑자, 선교사는 오늘도 시계와 하늘의 먹구름을 번갈아 쳐다봅니다.

 

최승암 (파송선교사, GMS 소속)

uga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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