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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이야기

확성기로 울려퍼지는 잔칫집 음악과 초상집 음악

며칠 전부터 목이 아프더니만 감기가 왔습니다. 감기 몸살 약을 먹었는데 그리 효과가 없습니다. 목이 계속 따가와서 침을 삼키기가 힘이 듭니다. 그리고 콧물도 좀 나고 이마도 좀 아픕니다. 꿀물도 마시고 하지만 더운 날씨에 선풍기 바람과 차 안의 에어컨 바람이 쉬 낫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감기가 걸렸다고 하면 나는 아직 감기로 고생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했는데 드디어 저도 감기로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5,6월 감기는 개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 개보다 못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녁에 공부를 하다가 시끄러운 잔칫집 음악 소리가 들려 잔칫집 구경을 하러 갔습니다. 갔더니 이웃에 초상집도 있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잔치집이든지 초상집이든지 집 앞 도로에 큰 천막을 치고 하루 종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음악을 틀어놓고 손님을 맞습니다. 초상집은 무슨 조가와 같은 음악을 종일 틀어 놓습니다. 잔칫집은 흥겨운 노래를 틀고 밤이 늦도록 춤을 춥니다. 가수까지 동원되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10시가 넘었는데 음악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다행히 저희 집에서 약 100M 떨어져 있어서 많이 시끄럽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웃들은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만 문제가 아니라 집 앞에다가 천막을 칩니다. 그리도 집 앞 도로를 다 막아서 차가 통행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잘 사는 사람일수록 천막의 크기가 커집니다. 식탁의수도 많고 좌석 수는 200-300석이 됩니다. 음식은 한 끼에 10-20달러 짜리가 준비되고 하객은 식사값을 축의금으로 대신합니다.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에서 결혼 잔치는 허례허식으로 모입니다. 꽃 장식이 수백 달러가 듭니다. 얼마 전에 어느 실버 여 선교사님이 양육한 젊은이가 기독교식으로 결혼식을 하기로 해서 아내가 반주를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선교사님 집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꽃 장식 값이 500불이었고 식사는 15불 짜리 였습니다. 음식 비용과 꽃 장식, 천막, 의자, 테이블, 발전기 등 비용이 3000-4000불은 될 것 같았습니다. 일반 근로자 3년 임금에 해당하는 비용입니다. 우리 나라도 결혼식이 호화스럽고 사치와 낭비가 심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캄보디아 역시 결혼식은 그런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관혼상제가 문제인 듯 합니다. 검소하고 실제적이고 꼭 필요한 가족들만 모여서 간단히 치르느냐? 아니면 화려하게 소비적인 행사로 치르느냐? 가난한 나라일수록 관혼상제를 귀중하게 생각하고 화려하게 치러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런 행사를 통해서라고 가족과 집안을 드러내고 싶은 것은 아닌지? 가난하게 사는 것을 가리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 결국 허례허식이 삶에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와 오히려 집안을 일으키는데 장애요소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빈부의 차가 심해서 결혼식만 보아도 가난한 사람들의 결혼식과 부유한 사람들의 결혼식은 비교가 됩니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은 피로연을 집 앞에서 천막을 치고 갖고 대형 식당에서도 열려 두 번 갖습니다. 차들이 몰려와 식당 앞의 도로가 마비가 되기도 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교통수단으로 알 수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학생들도 거의가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좀 나은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닙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고등학생도 많습니다. 대학생들도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닙니다. 다음은 소형 중고 승용차, 그 다음은 중형 중고 승용차,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닙니다. 고급 승용차나 사륜 구동차 중에는 1억을 넘는 차들도 많습니다. 렉서스 370, 토요다 중형 승용차 이상만 되면 의례 운전석 앞에 ‘2013 VIP’ 라고 적힌 종이가 세워져 있습니다. 경찰이 손을 대지 못하지요. 이런 차들은 반대편에 차가 오고 있어도 중앙선을 넘어 과속을 하면서 추월하기가 일쑤입니다.
공장 근로자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건물 청소하는 사람들은 월급이 60-100달러입니다. 학교 교사도 100달러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 교사는 매일 수 천 리엘씩 학생들에게 받습니다.(1달러가 4천 리엘입니다) 이 돈을 받고 과외 형식으로 가르치기도 하고 시험지를 팔기도 하고 성적을 올려주기도 합니다. 이 돈을 낼 수 있는 가정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의 자녀들은 돈을 법니다. 식당 앞에는 주차를 안내하는 사람이 있는데 거의가 젊은이들입니다. 월급은 얼마를 받는 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만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는 500, 100리엘의 팁이 오히려 더 큰 수입인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배우지 않고 단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하니 그들의 장래도 문제가 되고 더 나아가 국가의 장래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산업이 발전하지 않았으니 일자리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월급이 300-400 달러면 정말 좋은 직장인 셈입니다.
선교사의 주위에도 한 달에 50-100, 혹은 200 달러 전후의 월급을 받는 소위 사역자, 혹은 스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지키거나 청소를 하거나 주방에서 일을 하거나 운전을 하거나 유치원 교사, 방과후 학교 선생, 신학생, 전도사, 그리고 목사들입니다. 현지인들의 생활 수준과 비슷한 수준들이지요. 단지 선교사들과 함께 있어서 선교사들에게서 그리고 한국의 방문객들에게서 좀 나은 대접을 받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 볼수록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서 함께하는 사람들이기 보다는 고용된 근로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 칠 수가 없습니다. 삶의 수준이 달라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만 선교사는 잘 사는 외국인이고 그들은 어쩔 수 없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현지인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상황, 복음은 모든 사람, 혈색, 신분, 직업, 성별을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여야 하는데 늘 물과 기름과 같이 나누어져 이질적인 모습을 봅니다.
선교사들의 입에서 우리들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결국 어떤 곤란하고 불만스럽고 어려운 상황이 되어 캄보디아 사람이 선교사의 곁을 떠나는 경우를 경험하고 나면 선교사들은 자신이 이방인임을 실감한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캄보디아 어린이를 하나 둘 가르치기 시작하고 그들의 부모를 만나기 시작하는데 그들도 저를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면 어떻게 하나? 생각해 봅니다. 이방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 안에서 형제자매로, 부모와 자녀 같은 만남이 되도록 해야 하겠는데 지혜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야 될 것입니다.
얼마 전 10년 이상을 캄보디아 교회 지도자로 세울 기대를 가지고 양육하고 신학수업을 받게 한 목사가 편지 한 장 남기고 인근 다른 나라로 직업을 찾아 떠나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를 양육한 선교사님이 얼마나 크게 실망을 했는지 모릅니다. 수년 동안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공을 들인 사역자가 선교사님을 떠나는 경우는 허다한 일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선교사님들이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양육하지 않고 자기 사역자로 양육한 것이 문제였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맞지 않으면 쉽게 떠나 버리는 현상 이면에는 선교사들이 매사에 돈으로 사람을 다루고 사역을 하는 양상에서 비롯 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나 노력을 제공한 만큼의 돈은 필요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역시 중요합니다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들이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요6:26)고 말씀하신 예수님에게서 무언가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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