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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이야기

6월 4일(화) 서울 한광교회 선교회 일행을 안내하였습니다.

주일 늦은 저녁 아시아나 항공 편으로 서울 한광교회 단기선교팀 일행 4명이 도착하였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 3분인데 그 중에 장로님 한 분은 경북대학교 신원(믿음의 동산)이라는 신앙동아리 11년 선배입니다. 그러니까 68세가 되신 분이지요. 일행들은 70이 다 되신 두 장로님과 50대 중반의 한 장로님, 그리고 50이 된 담임목사님입니다. 한광교회에서는 임만호선교사님이 사역하시는 희망의 학교에 매년 교복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방문은 파키스탄의 현지인 목사가 사역하는 교회의 건축후원을 위하여 방문하는 길에 캄보디아에 잠시 방문한 것입니다. 대학교 선배인 장로님이 저에게 하루 동안 일정의 안내를 부탁해 와서 주일 저녁 도착 이후 화요일 아침 출발까지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은 다시 방콕을 거쳐서 파키스탄 가라치에 도착하여 차로 4시간 거리를 달려 방문지에 도착했다가 다시 방콕을 경유해 인천으로 돌아가는 바쁘고 힘든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와 버스를 타는 시간만 17시간 왕복 34시간 정도 거리의 6박 7일의 일정입니다. 참 대단한 열정과 체력이 아니고서는 소화할 수 없는 일정이라 생각됩니다.
주일 저녁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 숙소에 도착하였고 월요일 아침 8시부터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제가 협력하고 있는 호산나학교를 먼저 방문하였습니다. 6월 1일이 국제 어린이 날이었는데 행사가 있어서 월요일에 하루 쉬어서 수업은 없었습니다. 학교 시설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다음은 김진각 장로님이 사역하시는 학숙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김진각 장로님은 7년 전에 NPIC(프놈펜 기술대학/전주대학교에서 세우고 교수요원이 파견되어 가르치고 있음)에 와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중 근로자들에게 복음을 저하기 위하여 공단에 들어가 시골에서 올라온 20여명의 근로자들을 양육하는 기숙사를 운영하다가 시골의 학생들을 받아서 학숙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4명의 여대생과 11명의 초, 중, 고등학생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부산 동아대학교에 1년 동안 한국 정부가 100% 지원하는 국가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당이 넓은 집을 임대하고 그 넓은 마당에서 주일이면 예배를 드리는데 인근에서 100여명의 어린이와 성인들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김진각 장로님은 65세의 나이인데 건강하신데다 성품이 얼마나 온화하신지 제가 참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2년 전 제가 안식년에 캄보디아에 왔을 때에 공단지역에서 집을 얻어 사역하시는 모습과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자신의 차로 학생들을 등하교 시키고 또 한국어를 가르치러 30분 정도의 거리를 매일 두 번 왕복하였습니다. 이제는 학교 가까이 넓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와서 그런 수고는 하지 않지만 주일마다 마당에 10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이루어 놓았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그리고 참 모범스런 선교라 생각되어 방문하신 분들에게 안내해 준 것입니다. 목사님과 세 분의 장로님이 적잖게 감동을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마침 캄보디아에 20년 전에 와서 사업을 시작하신 집사님이 와 계셨습니다. 또 집사님께서 김진각장로님의 학숙센터 마당에 지붕을 해서 비가 와도 예배드릴 수 있도록 300여만원의 경비를 들여 공사를 하였습니다. 20년 전에 10억의 돈을 들고 캄보디아에 와서 사업을 하려다가 3년 만에 거지가 되어서 프놈펜 거리를 헤매다가 제기한 이야기와 한국에서는 골수 불교도였는데 그래서 캄보디아에 올 때에 초와 향과 목탁과 장삼까지 가지고 왔으며 매일 1시간 이상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웠는데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이야기, 한인들이 20여명에 불과할 때부터 5000여명의 한인들이 살게 된 오늘까지 캄보디아의 변화의 경험을 들을 수 있는 덤도 얻었습니다.
다음은 아가페 고아원에 방문하였습니다. 아가페 고아원은 11년 전에 경남지역의 남전도회에서 정부로부터 50년 무상으로 땅을 임대하여 건물을 잘 지었습니다. 지금은 70여명의 농촌 지역의 결손가정 어린이들이 시설에 수용되어 있습니다. 구성은 미취학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을 구하여 떠나야 합니다. 학교는 인근의 공립학교에 다닙니다. 저녁 시간에 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한인회에서 한인 자녀들을 위한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남전도회에서 재정을 감당해 왔지만 후원이 어려웠는지 최근 몇 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하시는 분에게 운영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 총회신학교 동기인 송봉호 목사님을 고아원에 파송하여 고아원 운영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송봉호 목사님은 62세가 되었는데 부산에서 20년 목회를 하다가 우도라는 섬에 가서 10여년 목회를 하다가 선교사로 파송 받게 되었습니다. 섬 목회를 하게 된 동기가 태풍으로 바닥만 남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섬 교회를 보게 되었는데 계속 눈에서 그 모습이 사라지지 않아서 부산 지역 교회를 사임을 하고 퇴직금으로 교회를 건축하고 우도에서 계속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러던 중에 캄보디아로 부름을 받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송봉호 목사님과 선교사로 나오게 된 배경, 고아원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임만호 선교사님과 함께 희망의 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희망의 학교는 시내에서 30분 가량 떨어진 곳에 프놈펜 철거민들이 이주하여 사는 빈민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3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고등학교를 인가 받아 증축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주민들이 사는 빈민촌이었는데 계속 각 나라 구호단체에서 집도 지어주고 우물도 파 주고 길도 넓혀 주고 그리고 인근에 공장들까지 들어와서 일자리가 많이 생겨 이제는 빈민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2년 전에 한번 방문하였는데 그 때에는 오늘 길에 집이 별로 없어 거의 벌판이었는데 이제는 주위에 공장도 많고 도로 가에 주택도 많고 대규모의 주택단지도 건축하고 해서 도시가 계속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불과 2년 만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프놈펜이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도시가 팽창하고 있습니다.
마침 임만호선교사님을 파송한 경기도의 생명샘교회에서 17명의 성도들이 고등학교 건물 막바지 공사를 돕고 정원 조성공사를 하기 위해 와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남성들로 중년이 되시거나 장년이 되신 분들이었습니다. 여름 휴가철도 아닌데 일 주일씩이나 17명이 함께 와서 시간을 내어서 봉사를 할 수 있는지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SBS에서 희망의 학교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하여 제작진이 와 있었습니다. 중학생들도 한 학년이 한 시간씩 함께 흙을 나르며 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시설과 건축상황을 살펴보고 교무실에 들어가서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임만호 선교사님은 수년 전에 건강이 좋지 않아서 수술을 하여서 한 눈에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 전에 아들이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5월 30일이 사고를 당한 날인데 학교 한 귀퉁이에 아들 요한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고 친구들 몇 명이 방문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사들은 선교사님이 그 동안 양육한 청년들이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서 함께 삽을 들고 일을 하면서 선교사님을 도와 학교를 아름답게 세워가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보아도 단정하고 질서정연한 모습들이 선교사님과 선생님들이 교육을 잘 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현지 학교와는 물론이고 다른 선교사님들이 세운 학교와도 적지 않게 비교되는 면이 많았습니다. 소문대로 참 희망이 넘치는 학교였습니다.
3시 반이 되어서 수업을 마치자 전교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종회를 하고 하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킬링필드 이후 지금까지 교육다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캄보디아에 우리 선교사들에 의하여 좋은 학교가 하나 둘 세워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자라서 지도자가 되어 나라가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오래 이 땅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았습니다. 한국도 미국의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웠는데 평양의 숭실대, 서울의 연세대, 대구의 계명대학교입니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를 통하여 크리스찬리더가 배출되어 한국이 변화하고 발전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캄보디아 땅도 교육이 필요합니다. 공립 고등학교는 여전히 매일 얼마의 돈을 선생님에게 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은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을 합니다. 시험을 치면 답안지와 함께 돈을 내어야 성적이 나오는 나라입니다. 심지어 시험을 칠 때에 선생님에게 돈을 내면 컨닝을 할 수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한 명 있으면 그 교실에서 시험을 보는 학생은 모두가 좋은 성적이 나옵니다. 프놈펜 대학을 졸업하여도 나누기를 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초, 중, 고, 대학 모두 오전 수업 아니면 오후 수업입니다. 초, 중, 고등학교는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개인 적인 일이 생겨도 결석을 해 버립니다. 제가 협력하고 있는 호산나학교에서도 선생님의 지각은 예사입니다. 선생님들이 킬링필드(1975-1978) 이후의 배우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 중에서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그리고 예체능 교육도 없습니다.
킬링필드 때에 캄보디아의 인구가 700만인데 300만이 죽고 50만이 탈출을 했다고 합니다. 국민의 절반이 3년 만에 사라진 나라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아가페 고아원은 건물이 크고 교실도 많아서 앞으로 학교를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고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산나학교와 희망의 학교, 그 외에도 많은 학교들이 선교사들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선교를 위하여 관심과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방문 팀 일행과 송봉호 목사님과 함께 프놈펜으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과일의 황제라고 불리는 두리안을 사서 숙소에서 맛을 본 후에 9시 가까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아침 6시 40분에 숙소에서 다시 만나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프놈펜 대학에 잠시 들렀다가 공항에 배웅을 하였습니다. 방콕을 경유하여 6시간 거리의 파키스탄의 카라치 까지, 그리고 다시 차량으로 4시간을 달려 방문지 까지,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토요일까지, 섬겼던 분들 모두 건강하게 사역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한광교회가 선교를 통하여 놀라운 변화와 부흥과 영적성숙을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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