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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말갤러리서 퍼옴



나와 다른 것 인정하기-해달 산지기일기서 퍼옴-



제 아내는 어지럽혀져 있거나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깔끔주의자입니다.
저녁에 직장에서 퇴근하여 집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거실이 어지럽혀 있지는 않은지를 검사(!)하고, 뭔가가 나뒹굴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열 살짜리 아들을 불러서 소리칩니다
. “아, 이거 뭐야? 왜 책가방과 옷이 아무 데나 저렇게 뒹굴고 있는 거야?” 저와 아들 둘이서 한바탕 놀다가 잠시 숨이라도 돌릴 때 아내가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둘 다 꾸지람을 듣습니다. ㅎㅎ

아침에 헤어져 하루를 각자 일터와 학교에서 보내고 저녁에 다시 만났는데, 무사히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먼저 감사하고, 서로를 기쁨으로 맞는 말부터 할 수 없느냐고 몇 번 부탁도 했지만, 효과는 잠시 며칠 뿐, 아이들을 키운 지난 십수 년간 정말 한결같이 ‘날마다’ 반복되는 꾸지람입니다.
게다가 먼저 천국 간 딸도 그랬지만, 열 살짜리 아들도 정말이지, 지지리도 말을 안 듣습니다. 학교 갔다 오면 휙! 휙!

신혼 초 때, 제가 나름대로는 부엌엔 얼씬도 않아야 하는 경상도 남자의 체면(!!)을 내려놓고 아내를 돕는 마음으로 열심히 설거지를 했는데, 아내가 나중에 부엌에 들어가 검사를 하더니 소리쳤습니다.
“설거지 이렇게 하려면 앞으로 설거지 하지 마세요.”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왜? 깨끗이 안됐나? 수세미질 잘 했는데? 세제도 잘 씻어냈는데? 그릇 정리를 잘못 했나?”
아내가 하는 말, “설거지를 끝냈으면 개수대 주변에 튄 물까지 말끔히 닦아야죠. 이렇게 지저분하게 해두면 어떻게 해요?”

그 때는 제가 혈기가 뜨거울 때입니다.
나름대로 돕겠다는 마음에 열심히 설거지를 했는데, 그 수고에 대해 칭찬은 못해 줄망정 그 하찮은(!) 마무리를 마저 못했다고 “이렇게 설거지 하려면 앞으론 설거지 하지 마세요”라니! 그래서 속으로 그랬습니다
. ‘에잇! 안 해, 안 해! 앞으로 설거지 안 해! 실컷 도와주고 욕 먹고! 이게 뭐야?’

ㅎㅎㅎㅎ 밴댕이 소갈딱지의 반응입니다. 물론 그 다음 주엔 ‘회개’를 하고, 다시 설거지에 도전했습니다.
이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아내가 지적한 것을 개선하기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갈릴리마을 공동체를 할 때 후배 남자들에게 단호하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잘 들어요! 설거지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마지막, 개수대 주변의 물기까지 말끔히 닦는 것! 알았어요?
그거까지 해야 여자들은 설거지를 다했다고 평가한다니까!”

나름 잘했다고 어깨를 으쓱 했는데, 옆에 있던 다른 한 자매님이 슬쩍 한 마디 거듭니다.
“간사님, 아니죠. 개수대 음식찌꺼기까지 처리해 줘야 설거지를 완성한 거죠!”

요즘 아이들 말로 “헐~!” 제가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정말 설거지의 도는 깊고도 멀도다!


그런데, 그렇게 20년 결혼 생활을 한결같이 완벽주의자 깔끔주의자로 살고 있는 아내인데, 딱 한 가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모습이 있습니다.
아내는 날마다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샤워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아내가 샤워 후에 나온 욕실을 들어가 보면 샤워기 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벽이고 바닥이고 물 천지입니다.
욕실 신발 속에도 물이 다 튀어서 무심코 신었다가 양말을 적시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 샤워 커튼을 달아주었는데, 그건 또 답답하다고 떼 버렸습니다. 같은 깔끔주의자인데, 샤워 후 욕실이 물 천지여도 그건 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아내가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내의 그런 이중성(?)이 참 좋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완벽주의자의 부족함과 허물을 보는 것은 말입니다!
예전에 공동체 할 때 리더인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을 때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뒤에서 서로 소리죽여 웃으며 손뼉을 치며 행복해 했다는 그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푸하하핫!
아내가 샤워를 하고 나온 욕실엔 제가 아무 소리도 않고 슬그머니 들어가 빨래통 속의 수건을 하나 꺼내 욕실 바닥과 욕실화 속의 물기를 말끔히 닦습니다.
연로하신 장모님도 계시고 어린 아들도 있는데 혹시라도 물기로 미끄러워진 바닥에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에게 “제발 샤워하고 나서 지저분한 물기들을 좀 닦고 나오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그냥 제가 나중에 슬그머니 들어가서 닦고 나옵니다.
아니, 완벽주의 깔끔주의자 아내가 그것까지 잘해 내면 우리 다른 식구들이 기죽어서 안 됩니다. 뭔가 허술하고 모자란 부분이 있어야 우리 마음이 편하지! ㅎㅎㅎ

그리고 실은, 지난날 제가 주위 사람들에게 저지른 잘못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꼴’을 보고는 잔소리하고 꾸짖기 일쑤였고, 안 되는 일을 가지고 그게 왜 안 되느냐고 소리치던 저였습니다.


이런 거 보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안은 이 사람에겐 견디기 힘든 조건이요 환경인데, 저 사람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오히려 편안한 조건, 환경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천국 먼저 간 딸아이는 방이 어지럽혀져 있어도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는데, 엄마는 그것을 차마 두고 보질 못해서 늘 항상 소리치고 나무랐습니다. 지금 열 살 짜리 늦둥이 아들도 꼭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다고 고쳐지던가요? 그저 웃지요! 이놈들은 그게 왜 짜증나고 불편하고 두고 볼 수가 없는 꼬락서니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납득이 안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변화가 안 옵니다.
그야말로 엄마의 잔소리로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은 제발 정리 정돈하고 살라고 소리치고, 한 사람은 억지로 치우는 흉내나 내면서 스트레스 받고… 쯧쯧!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랜 세월, 제가 제 주변 사람들에게 해온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안은 내게는 옳은 일인데, 다른 사람에겐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옳지 않은 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의 시행착오를 돌아보며,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 기준, 내 취향, 내 감정, 내 습관을 기준으로 다른 이들을 들볶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상대가 나의 원하는 바대로 행해 주도록 잔소리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애걸복걸 간청해 보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잔소리 듣기 싫어서 억지로 들어주기는 들어주는데, 들어주는 쪽이 전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너무도 큰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나 편하자고 상대를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셈이 됩니다.
이게 참 못할 짓입니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저는 이제 어느 정도 훈련이 되었고, 무엇보다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 왜 유익인지를 터득하였습니다.
집안에 아내 같은 사람이 하나 없으면, 집안구석 꼬락서니가 말이 아닐 게 뻔한 일입니다.
그야말로 돼지우리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아내의 잔소리가 미치지 않는 제 작업실 산지기집 안팎 꼬락서니를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나 또한 완벽주의자 깔끔주의자로 살아왔는데, 한 술 더 뜨는 아내를 만나, 그리고 이제는 다듬어지고 둥글둥글해진 탓에, 대충 대충해 놓고, 지저분하게 늘어놓고 쌓아놓고, 그래도 <마음 편하게> 너무도 자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갈릴리마을을 방문하는 깔끔주의자들, 완벽주의자들에게 때로 한 소리 듣습니다.
꼴이 이게 뭐냐고? 지저분해서 마음에 안 든다고!

예전 같으면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심지어 죄책감도 느꼈을 텐데, 요즘은 그저 죄송하다고 인사만 하고 맙니다.
예전에 내가 옳다고 여기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것만이 <옳은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나니, 차마 두고 볼 수 없어서 한 소리 지적하시는 그분들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가 다른 모든 이들의 기준과 취향에 맞추어주며 살 순 없다는 것도, 또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건 그렇게 깔끔을 떨면서도 샤워 후의 욕실은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 아내를 향해 잔소리를 하는 대신, 그게 눈에 들어오는 내가 아무 소리 않고 뒤 처리를 해줍니다
. 단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말입니다. 아주 흔쾌히, 기쁨으로 말입니다.

설령 아내가 그 습관을 고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고 있다 할지라도 더 이상 그런 것이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냥 ‘아내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내의 모자라는 부분, 잘 안 되는 부분, 약점, 단점을 잘 보완해주고 도와주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아내 옆에다 붙여주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내가 도와야 하는 것이고, 그럴 능력이 도저히 안 되면, 그 다음에는 그냥 이 상황을 그대로 용납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튄 물 때문에 욕실이 좀 지저분해진들 그것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도 아니고(이거 깨닫는데 40년 걸렸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물기는 말끔히 마르기 마련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미끄러지는 위험에 대비해서는 미끄럼방지 패드를 바닥 타일에 다 붙였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저의 이런 인식과 태도에 대해 한 마디 하실 분도 분명 계시겠지만, 저는 제가 이렇게 변한 것이 너무도 대견스럽고 마음에 듭니다. 아주 기특해서 죽겠습니다. ㅎㅎ 그러니 그냥 두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 개인 작업실이나 승용차, 우리 개인 주택과는 달리, 많은 이들이 찾는 공적인 공간(어부동 연꽃마을)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정리 정돈과 청소의 기준을 가능한 높은 수준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그렇게 하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동역하는 동료 스탭들에게 그 일이 고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함께 권하기는 하되, 잘 안 되는 것을 강요하고 윽박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할 능력과 시간이 된다면 내가 기쁨으로 감당하면 되는 일입니다.

감사하게도 현재 저와 같이 <해와달> 문서사역과 어부동 연꽃마을 농촌체험장의 짐을 나누어지고 있는 아우 박 형제님은 저보다 훨씬 정리정돈의 대가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뭐라 잔소리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를 좀 말립니다.

하지만 혹시 나중에 다른 동역자가 박 형제님만큼 일을 하지 못해도, 허허허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에베소서 4:7-12>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특별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선물을 나눠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선물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서로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더욱 강하게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쉬운성경 번역본>


상대방은 지금 이 지저분하고 어지럽혀져 있는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고 전혀 불편하지 않은데 그게 내 눈에는 불편하고 정리정돈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면, 그 일은 내가 감당해 주어야 하는 내 몫의 일입니다
. 그런 게 내 눈에 들어온다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재능>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그 재능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어이쿠! 다른 이들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내게 그 특별한 재능을 주셨답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을 나에게 맞추라고 소리치고 분노하고 발악하는 대신,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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