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영범강의노래

그 날은 제법 찬 기운이 도는 늦가을의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그 날 아침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골목어귀에 나와 훌쩍이며 우릴 환송해 주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의연하게 짐을 꾸렸습니다.
짐이라야 20여 년간 식당을 하던 세간들은 모두 남긴 뒤라 단촐했습니다. 그것도 어머니가 끝까지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실은 큰 된장독과 가을걷이로 얻은 쌀이며, 감자, 고구마, 무 등이 반을 차지했으니 세간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어머니, 막내, 나 이렇게 셋이 나란히 탄 1톤 트럭이 고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차창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 가족에게 닥친 고난의 여정이 함께 스쳐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아버지는 맨 정신일 때는 ‘법이 없이도 살 양반’이었고, 별명이 ‘군수’라고 하여 인근 동리의 궂은일을 도맡아하시던 분이었습니다. 하는 사업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돈 들어가는 다섯 자녀와 동생들이 그의 어깨에 무거운 짐으로 걸려 있었습니다. 이런 고통을 잊기 위해 선택한 것이 술이었던 모양입니다. 술에 찌들면서 찾아 온 것은 당뇨, 두 번의 죽을 뻔한 교통사고, 폭언과 폭력...이를 감내하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 어머니의 몫이었고, 자녀들에겐 아픔 이상이었습니다. 이 고난이 ‘영하 50도’는 안 되어도 족히 ‘영하 20도쯤’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던 우리 가정에도 한줄기 빛이 찾아 들었습니다.
셋째가 주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 이후 막내 동생과 제가 주님을 만나면서 우리 오남매는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정을 이 어둠 가운데서 건져내 달라고 말입니다.
아버지의 술병이 깊어지면서 헛것을 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집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뒷방엔 이름 모를 신주단지가 모셔졌습니다.
우리 오남매는 수년간 고통 속에서 지켜보던 끝에 이 신전을 걷어 치워버리기로 모의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의지하는 것이 또 하나 늘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주말 타지에서 학교와 직장생활을 하던 우리 남매들은 고향집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일하러 간 틈을 타서 뒷방에 놓여져 있던 신주단지와 정신 사납게 만들던 모든 물품들을 쓸어서 차 트렁크에 싣고는 아버지가 올지도 모를 반대 길로 산을 넘어 한두 시간을 더 돌아야하는 길로 도망치듯 고향집을 나왔습니다. 그 길로 가다보면 제법 물살이 큰 강이 나오는데 우린 그 것들을 강물에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이 던져버렸습니다. 그날 저녁 아마 굉장한 폭풍이 우리 집을 덮쳤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영적 전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고모 삼촌들과 의논하여 아버지를 알콜병동에 모셨습니다. 그 분들은 집을 팔고 4대를 살아온 고향을 떠나는 문제도 ‘환경을 바꿔줘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조카들의 의견에 함께 아파하며 동의해 주었습니다.
집을 매매하는 일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 해 주셨습니다. IMF 직후라 거래가 중단된 상태에서 딱 필요한 때에 우리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것은 절망스럽게도 시세의 딱 절반가격과 말미는 3일이었습니다. 이 돈을 받아도 빚을 갚고 나면 전세방 얻기도 턱 없이 모자라는 터라 속상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니 미룰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 그 마을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다른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마을 식당들의 영업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니 하나님의 도우심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아버지에게 여러 사고가 계속될수록 이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한번 큰 사고를 칠(?) 때마다 한 명씩 그렇게 우리 가족과 친척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니까요. 그 일에 육신의 아버지가 ‘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향해 같이 아파하게 되었고, 주님 안에서 다시 살게 해야겠다고 결단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인도해 주셨다고 믿으며 감사를 드립니다.
‘갈데아 우르’를 떠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3시간여를 달려 ‘새로운 땅’ 구미에 도착했습니다.
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많은 고난을 허락해 주셨고, 그보다 더 큰 축복과 치유와 회복의 은혜도 함께 예비해 주셨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생기는 불안으로부터 충분히 여유로울 정도로 벗어나기까지는 6, 7년의 시간이 더 지나야 했습니다.
고난을 주실 때 축복도 예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난의 때에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니, 우리가 가진 것 모두를 허물어버리셨지만, 그래서 아팠지만, 우리의 기대와 소망보다 더 큰 것으로 회복시켜주신 그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할렐루야(*)
<가족: 이순미 집사>
제목 날짜
[2011.10.9] 잊지 않고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 (123예친 전인수)   2011.10.08
[2011.10.2] “언니야, 우리 안 만났으면 우짤번 했노?” (712예친 김종래 집사)   2011.10.01
[2011.9.24] 내일교회 아르헨티나 단기선교팀의 큰 사랑을 받고 (박성흠-정명희 선교사)   2011.09.25
[2011.9.18]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넘치는 땅 (644예친 홍윤정 집사)   2011.09.18
[2011.9.11]기적의 은혜을 베푸신 하나님 (311예친 김영관집사)   2011.09.10
[2011.9.4]어둠 속에 빛나는 십자가 (283예친 한상시 집사)   2011.09.04
[2011.8.28]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624예친 741예친 조태한 집사)   2011.08.27
[2011.8.21]복된 내일 교회 (624예친 김주옥 집사)   2011.08.21
[2011.8.7] 가지치기 (126예친 권윤선 집사)   2011.08.06
[2011.7.31]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알게 하신 하나님 (812예친 곽정희 집사)   2011.08.05
[2011.7.24] 한국 땅에서 만난 하나님 (포네이션-중국팀 수지에)   2011.07.24
[2011.7.17] 찬양의 이유가 되시는 하나님 (425예친 김미진 집사)   2011.07.24
[2011.7.10] 죄와 사망의 삶에서 생명과 성령의 삶으로 (221예친 권유경 집사)   2011.07.15
[2011.7.3] 우리의 가정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 (734예친 이상대 집사)   2011.07.03
[2011.6.26]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611예친 김종만 성도)   2011.06.26
[2011.6.19] 새로운 신앙의 둥지 (311예친 김연기 집사)   2011.06.18
[2011.6.12]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으로...(110예친 이상훈 성도)   2011.06.12
[2011.6.5] 보고 싶은 아버지, 천국에서 만나요(726예친 구성숙 집사)   2011.06.05
[2011.5.29] 사랑의 떡국 한 그릇(343예친 조미순성도)   2011.05.29
[2011.5.22] 나의 영원하신 중보자(321예친 이상명집사)   2011.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