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범강의노래
[2012.1.22]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 (864예친 이미화b성도)
[2012.1.22]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 (864예친 이미화b성도)
“안녕하세요, 이미화 집사님 송민애 전도사입니다.”
매주 통화로 문자로 섬겨주시는 전도사님의
맑은 목소리였습니다. “예, 부족하지만 해 볼게요.” 라는 저의 대답으로 전화통화가 끝났습니다.
잠시 후, 밀려드는 부담과 약간의 후회…… . 귀한 교회의 주보 한 면에 무엇 하나 하나님께
아름답게 살아드리지 못한 이 부족한 사람의 간증을 쓰라니…… .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워서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외면했던 믿음생활을 용기 내서 하나하나 열어보게 되고.
과거에도 지금도 한결같이 동행하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글을 쓰는 부담이 감사가 되어 눈물로 흐릅니다.
7살 때 초코파이와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못 이겨 옆집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에서 내가 본 첫 번째 충격적인 사진. 그것은 십자가에 피 흘리며 못박히신 예수님 사진이었습니다.
“저 아저씨 왜 아프게 저기 매달려 있어요?”
나의 질문에 유치부 선생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 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제가 저 아저씨 피 흐르게 한 거에요?
저 안 그랬어요.” 손사래를 치는 저를 보며 싱긋 웃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저의 첫 만남 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40대에 접어든 저는 이제 압니다.
예수님을 제가 그렇게 아프게 한 것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구속의 은혜로 학창시절을 주님의 품에서 어렵지 않게 보냈습니다.
대학시절 하나님을 믿지 않던 선배와 교제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남편입니다.
정말 착하고 선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결혼은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기도원에 올라가 이 사람과 해어지고 믿음의 청년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이 주신 응답에 한마디. “너 보다 나은 나의 자녀다.”(하나님 저는 7살 때부터 믿었는데……)
저는 그 사람과 결혼했고 썬데이 크리스찬 이지만 교회에 잘 나와 주는 남편이 고마웠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이 저의 기도제목 이었는데 이렇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구미 OO전자에서 10여년 근속하던 남편은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고 남편은 드디어 하나님께 의지하며 회복하는 참 맛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3개월 동안 새벽 제단을 쌓았습니다. ‘너보다 낫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 동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통이 연단이 되어 하나님께 한 걸음 나아가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자기보다 다른 직원들을 걱정하며 기도하는 남편을 아름답게 보신 하나님은 몇 개의 경력사원 채용에 합격시켜주셨고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옮긴 회사로 출근을 했습니다.
당시 남편과 나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고 양가 어른들도 대구에 계신 터라 대구 쪽의 OO전자로 옮기기를 원했지만 그 회사는 경력 채용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타 도시에서 3년간 살았고 너무 좋은 교회에서 남편은 찬양대로 나는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보낸 이유를 그 선하신 뜻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해외 주재원이 가능한 관리직을 채용하는데 혹시 관심이 있냐는 전화였습니다.
남편과 나는 두 아들의 국제학교 비용이 100% 지원된다는 조건에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그 회사가 바로 남편이 옮기기를 원했던 대구의 OO전자 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바로 대구로 옮겨 주실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계와 계획은 무지한 우리들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좋은 교회 해외생활이라는 경험이라는 가장 선한 길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가까운 교회를 섬기기로 하고 몇몇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선뜻 등록이 망설여져 기도하던 중 인터넷에서 내일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첫 예배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바로 이 교회다 라고 확신하며 등록했습니다. 얼마 전 눈높이 성경공부의 달인 허병은 목사님 과 교회등록이 오래되지 않은 성도들이 많은 201반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 대부분 기존 교회 교역자 분들이나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내일교회를 추천 받았다고 하더군요.
전 속으로 감히 말해봅니다.
‘난 하나님 추천 받고 왔는데^^’ 김준혜 집사님이 섬겨주시는 864예친에 소속되어 나눔의 기쁨을 한 주 한 주 맛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이라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고 그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아멘.
<가족: 서영민집사, 상우, 상연>
“안녕하세요, 이미화 집사님 송민애 전도사입니다.”
매주 통화로 문자로 섬겨주시는 전도사님의
맑은 목소리였습니다. “예, 부족하지만 해 볼게요.” 라는 저의 대답으로 전화통화가 끝났습니다.
잠시 후, 밀려드는 부담과 약간의 후회…… . 귀한 교회의 주보 한 면에 무엇 하나 하나님께
아름답게 살아드리지 못한 이 부족한 사람의 간증을 쓰라니…… .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워서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외면했던 믿음생활을 용기 내서 하나하나 열어보게 되고.
과거에도 지금도 한결같이 동행하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글을 쓰는 부담이 감사가 되어 눈물로 흐릅니다.
7살 때 초코파이와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못 이겨 옆집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에서 내가 본 첫 번째 충격적인 사진. 그것은 십자가에 피 흘리며 못박히신 예수님 사진이었습니다.
“저 아저씨 왜 아프게 저기 매달려 있어요?”
나의 질문에 유치부 선생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 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제가 저 아저씨 피 흐르게 한 거에요?
저 안 그랬어요.” 손사래를 치는 저를 보며 싱긋 웃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저의 첫 만남 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40대에 접어든 저는 이제 압니다.
예수님을 제가 그렇게 아프게 한 것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구속의 은혜로 학창시절을 주님의 품에서 어렵지 않게 보냈습니다.
대학시절 하나님을 믿지 않던 선배와 교제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남편입니다.
정말 착하고 선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결혼은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기도원에 올라가 이 사람과 해어지고 믿음의 청년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이 주신 응답에 한마디. “너 보다 나은 나의 자녀다.”(하나님 저는 7살 때부터 믿었는데……)
저는 그 사람과 결혼했고 썬데이 크리스찬 이지만 교회에 잘 나와 주는 남편이 고마웠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이 저의 기도제목 이었는데 이렇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구미 OO전자에서 10여년 근속하던 남편은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고 남편은 드디어 하나님께 의지하며 회복하는 참 맛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3개월 동안 새벽 제단을 쌓았습니다. ‘너보다 낫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 동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통이 연단이 되어 하나님께 한 걸음 나아가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자기보다 다른 직원들을 걱정하며 기도하는 남편을 아름답게 보신 하나님은 몇 개의 경력사원 채용에 합격시켜주셨고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옮긴 회사로 출근을 했습니다.
당시 남편과 나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고 양가 어른들도 대구에 계신 터라 대구 쪽의 OO전자로 옮기기를 원했지만 그 회사는 경력 채용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타 도시에서 3년간 살았고 너무 좋은 교회에서 남편은 찬양대로 나는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보낸 이유를 그 선하신 뜻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해외 주재원이 가능한 관리직을 채용하는데 혹시 관심이 있냐는 전화였습니다.
남편과 나는 두 아들의 국제학교 비용이 100% 지원된다는 조건에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그 회사가 바로 남편이 옮기기를 원했던 대구의 OO전자 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바로 대구로 옮겨 주실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계와 계획은 무지한 우리들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좋은 교회 해외생활이라는 경험이라는 가장 선한 길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가까운 교회를 섬기기로 하고 몇몇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선뜻 등록이 망설여져 기도하던 중 인터넷에서 내일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첫 예배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바로 이 교회다 라고 확신하며 등록했습니다. 얼마 전 눈높이 성경공부의 달인 허병은 목사님 과 교회등록이 오래되지 않은 성도들이 많은 201반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 대부분 기존 교회 교역자 분들이나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내일교회를 추천 받았다고 하더군요.
전 속으로 감히 말해봅니다.
‘난 하나님 추천 받고 왔는데^^’ 김준혜 집사님이 섬겨주시는 864예친에 소속되어 나눔의 기쁨을 한 주 한 주 맛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이라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고 그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아멘.
<가족: 서영민집사, 상우, 상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