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현장이야기
입장 바꾸어 생각하기(이게 뭐지?)
입장 바꾸어 생각해봅시다.
아내는 두 달 가까이 시골 농장에 있는 교회에 가서 반주로 예배를 돕고 있습니다. 어느 평신도 선교사님의 요청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그 동안 저는 후배 선교사의 시골교회에 가서 리코더를 가르치느라 함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4주 동안의 리코더 교육을 마친 후 함께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2주 동안 참석하였습니다. 어느 분이 10ha의 땅에 농장을 조성하고 30여 평의 예배당을 함석으로 지었습니다. 함석으로 지은데다가 창문 크기가 작아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얼마나 더운지 또 선풍기는 천장에 달아 놓아서 위에 있는 뜨거운 바람이 내려옵니다. 화학공업을 전공한 저의 눈으로 보면 정말 답답할 정도로 너무 상식 없이 지었습니다. 현지인들은 땀을 흘리지 않고 앉아 있는데 한국사람은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립니다. 전에는 본인이 농장에 기거하면서 현지인을 데려다가 어린이들에게 글도 가르쳤지만 사정상 프놈펜으로 나오게 되어서 주일에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캄보디아에 온지 1년이 되지 않는 몇 분들과 함께 두 달 가까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2주 동안 함께 참석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그 분이 사회를 보는데 어린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사회를 하고 찬송은 우리 찬송가를 한국인들만 불렀습니다. 그 동안 어린이들에게 4가지의 찬송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싹트네 싹터요’ ‘어꾼 어꾼.’ ‘예수 사랑하심은’ ‘좋으신 하나님’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아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어린이가 10명에 한 명 정도입니다. 설교는 이제 언어공부를 시작하고 있는 젊은 선교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2주 동안 참석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우리가 그 자리에 한 시간 동안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알지도 못하는 한국말,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캄보디아 말을 한 시간 동안 앉아서 들어야 한다면? 가르쳐 준 쉬운 노래는 알겠는데 자기들 말로 하는 노래는 도무지 못 알아 듣겠고 자기 들은 손을 들고 눈을 감고 열심히 부르는데 왜 저러는지 잘 모르겠고… 한 번 두 번 참석하는데 이게 뭐지? 왜 저 사람들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만 계속 하고 있을까? 그런데 휴대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사진은 찍어서 무엇을 하려는지? 앞에 나가서 노래하면 사탕을 나누어 주고…마치면 빵 하나씩 받아 오고. 그렇게 한 번 두 번 참석을 하는데 계속 참석하면 어떻게 되는지? 다음 주에는 셔츠를 준다고 하고 파티도 한다고 하는데… 이런 일들이 한 동안 계속 반복되고 있다면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들이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몇 주 전에는 15분 동안 한국말로 자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는 60여명의 캄보디아 어린이들과 4명의 한국인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시작하고 어린이들에게 과자며 빵이며 셔츠며 선물들을 나누어 주고 땅을 사고 머잖아 건물도 짓고 현지인 사역자도 세우고 월급도 주고 매주 점심까지 주면서 교회를 하니 이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해서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만들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 교회는 자립도 안되고 자립 의지도 없고 사역자는 선교사의 주머니만 바라 본다고 불평들을 하니 아니러니도 이런 아이러니 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더 이해하지 못할 일은 성령님께서 다 알아서 일하신다고 하시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닙니다. 성령께서도 물론 일하시지만 이렇게 이성과 지성과 상식을 무시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바울 사도는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일만 마디보다 알아 듣는 말 한마디가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린이들의 귀에 들리는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입니다. 열정 하나로 농장을 세우고 예배당을 지은 집사님의 열심은 인정되나 그의 방법은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설교를 한 젊은 선교사님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열정 하나로 시작했는데 한 주일 두 주일 지날수록 욕심에 불과하였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매 주일 설교를 준비하지만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언어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고 나서 한국어 교육을 멈추었습니다.
그 날에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 분이 또 있었는데 캄보디아에서 7년 째 사업을 하시는 분입니다. 4년 정도는 한국을 오고 가다가 3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머물고 계시는데 그 동안 통역자를 데리고 다녔는데 현지인과 마음이 통하기 위하여는 그들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언어공부를 하시는 60세가 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아내 때문에 교회에는 가끔 나갔는데 신앙은 별로 없는 분입니다. 그 분이 캄보디아에 와서 사업을 하시면서 깨달은 점은 남의 이야기만 듣고 하면 100% 실패라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하나 하나 공부하고 경험하고 터득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나름대로 느낀 선교사들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도 내어 놓았습니다. 그 분의 요점은 진정 캄보디아를 위한다면 당장 교회 몇 개를 세우는 과시적인 사역이 아니라 미래를 위하여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 같이 맞는 말이고 정확한 평가입니다. 그런데 선교사들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신앙도 제대로 없는 사업하시는 분이 잘 알고 있는 원칙을 왜 선교사들은 지키지 않는지? 선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잘 못 물들까 염려스럽습니다. 특히 선교를 잘 한다고 한국에 소문이 나서 유명한 선교사일수록 더욱 만나고 싶지 않아집니다.
선교사들을 만나보니 두 부류로 나누어 지는 것 같습니다. 한 부류는 그 동안 이렇게 하여서 이런 것들을 이루어 놓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선교사와 그 동안 실패를 거듭하면서 지금도 많은 반성을 하면서 사역하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선교사입니다. 실패와 반성을 말하는 선임 선교사를 만나야 제대로 선교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번 토요일과 주일에는 10년이 넘은 선교사의 사역지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프놈펜에서 3시간이 넘는 거리입니다. 좋은 교제와 귀한 현장학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내는 두 달 가까이 시골 농장에 있는 교회에 가서 반주로 예배를 돕고 있습니다. 어느 평신도 선교사님의 요청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그 동안 저는 후배 선교사의 시골교회에 가서 리코더를 가르치느라 함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4주 동안의 리코더 교육을 마친 후 함께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2주 동안 참석하였습니다. 어느 분이 10ha의 땅에 농장을 조성하고 30여 평의 예배당을 함석으로 지었습니다. 함석으로 지은데다가 창문 크기가 작아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얼마나 더운지 또 선풍기는 천장에 달아 놓아서 위에 있는 뜨거운 바람이 내려옵니다. 화학공업을 전공한 저의 눈으로 보면 정말 답답할 정도로 너무 상식 없이 지었습니다. 현지인들은 땀을 흘리지 않고 앉아 있는데 한국사람은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립니다. 전에는 본인이 농장에 기거하면서 현지인을 데려다가 어린이들에게 글도 가르쳤지만 사정상 프놈펜으로 나오게 되어서 주일에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캄보디아에 온지 1년이 되지 않는 몇 분들과 함께 두 달 가까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2주 동안 함께 참석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그 분이 사회를 보는데 어린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사회를 하고 찬송은 우리 찬송가를 한국인들만 불렀습니다. 그 동안 어린이들에게 4가지의 찬송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싹트네 싹터요’ ‘어꾼 어꾼.’ ‘예수 사랑하심은’ ‘좋으신 하나님’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아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어린이가 10명에 한 명 정도입니다. 설교는 이제 언어공부를 시작하고 있는 젊은 선교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2주 동안 참석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우리가 그 자리에 한 시간 동안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알지도 못하는 한국말,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캄보디아 말을 한 시간 동안 앉아서 들어야 한다면? 가르쳐 준 쉬운 노래는 알겠는데 자기들 말로 하는 노래는 도무지 못 알아 듣겠고 자기 들은 손을 들고 눈을 감고 열심히 부르는데 왜 저러는지 잘 모르겠고… 한 번 두 번 참석하는데 이게 뭐지? 왜 저 사람들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만 계속 하고 있을까? 그런데 휴대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사진은 찍어서 무엇을 하려는지? 앞에 나가서 노래하면 사탕을 나누어 주고…마치면 빵 하나씩 받아 오고. 그렇게 한 번 두 번 참석을 하는데 계속 참석하면 어떻게 되는지? 다음 주에는 셔츠를 준다고 하고 파티도 한다고 하는데… 이런 일들이 한 동안 계속 반복되고 있다면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들이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몇 주 전에는 15분 동안 한국말로 자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는 60여명의 캄보디아 어린이들과 4명의 한국인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시작하고 어린이들에게 과자며 빵이며 셔츠며 선물들을 나누어 주고 땅을 사고 머잖아 건물도 짓고 현지인 사역자도 세우고 월급도 주고 매주 점심까지 주면서 교회를 하니 이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해서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만들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 교회는 자립도 안되고 자립 의지도 없고 사역자는 선교사의 주머니만 바라 본다고 불평들을 하니 아니러니도 이런 아이러니 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더 이해하지 못할 일은 성령님께서 다 알아서 일하신다고 하시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닙니다. 성령께서도 물론 일하시지만 이렇게 이성과 지성과 상식을 무시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바울 사도는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일만 마디보다 알아 듣는 말 한마디가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린이들의 귀에 들리는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입니다. 열정 하나로 농장을 세우고 예배당을 지은 집사님의 열심은 인정되나 그의 방법은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설교를 한 젊은 선교사님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열정 하나로 시작했는데 한 주일 두 주일 지날수록 욕심에 불과하였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매 주일 설교를 준비하지만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언어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고 나서 한국어 교육을 멈추었습니다.
그 날에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 분이 또 있었는데 캄보디아에서 7년 째 사업을 하시는 분입니다. 4년 정도는 한국을 오고 가다가 3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머물고 계시는데 그 동안 통역자를 데리고 다녔는데 현지인과 마음이 통하기 위하여는 그들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언어공부를 하시는 60세가 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아내 때문에 교회에는 가끔 나갔는데 신앙은 별로 없는 분입니다. 그 분이 캄보디아에 와서 사업을 하시면서 깨달은 점은 남의 이야기만 듣고 하면 100% 실패라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하나 하나 공부하고 경험하고 터득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나름대로 느낀 선교사들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도 내어 놓았습니다. 그 분의 요점은 진정 캄보디아를 위한다면 당장 교회 몇 개를 세우는 과시적인 사역이 아니라 미래를 위하여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 같이 맞는 말이고 정확한 평가입니다. 그런데 선교사들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신앙도 제대로 없는 사업하시는 분이 잘 알고 있는 원칙을 왜 선교사들은 지키지 않는지? 선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잘 못 물들까 염려스럽습니다. 특히 선교를 잘 한다고 한국에 소문이 나서 유명한 선교사일수록 더욱 만나고 싶지 않아집니다.
선교사들을 만나보니 두 부류로 나누어 지는 것 같습니다. 한 부류는 그 동안 이렇게 하여서 이런 것들을 이루어 놓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선교사와 그 동안 실패를 거듭하면서 지금도 많은 반성을 하면서 사역하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선교사입니다. 실패와 반성을 말하는 선임 선교사를 만나야 제대로 선교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번 토요일과 주일에는 10년이 넘은 선교사의 사역지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프놈펜에서 3시간이 넘는 거리입니다. 좋은 교제와 귀한 현장학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