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현장이야기
말라리아, 그리고 보신탕
[말라리아, 그리고 보신탕]
최승암 (내일교회 파송 선교사 / GMS 소속)
십 수년 전, 선교지 우간다에서 말라리아로 인해 천국 문턱을 넘나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방문한 지방 사역지의 현지 성도들 보다 말라리아 모기가 더 격하게 환영했나 봅니다. 대게 말라리아는 적절한 투약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당시는 투약한 '클로르퀸'이란 약에 저항성이 있는 말라리아로 약효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웬만한 질병이나 감기 몸살에는 '물 많이 드세요'라는 처방 외 달리 묘책을 쓰지 않던 경북대 출신 UBF 의사이신 유덕종 선교사님도 그때 만큼은 매우 진지하게 조치해 주셨습니다.
아기 낳은 고통에 견주어도 약하지 않다는 증언이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쉽지 않은 열병인가 봅니다. 아침이면 '오늘 이 한나절을 어떻게 버틸까?', 저녁이 되면 '오늘 이 밤을 어떻게 견딜까?'(신 28:67, 욥 7:4) 고열로 인한 구토와 어지러움, 뒤척임이 2 주 동안 이어졌습니다. 아내는 당시 함께 감염되어 치료 중이던 첫째 아들을 함께 돌보느라 두 배로 정신이 없었지요. 투병을 지켜보던 동료 선교사가 잔뜩 겁을 먹고 "말라리아 정~말 무섭구나" 독백하던 대사가 귀에 남아 있습니다.
말라리아로 사경을 헤매다 회복될 때 의미 있게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라는 찬송으로 성도가 이 땅을 떠날 때 많이 부르지요(옛 찬송가 295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로 가사가 이어집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탈진에서 눈을 떠보니 아버지 집이고 거기서 주님을 뵙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영혼의 고백을 담아 여러 차례 눈물로 불렀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을 때 천국의 소망이 그렇게 큰 위로와 은혜가 될 줄 몰랐습니다.
20년을 훨씬 넘긴 아프리카 선교, 일가 친족 안에 목회자가 많아 신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 오히려 결단과 헌신 필요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이런 배경은(?) 이 땅에선 그럴 듯 하지만 주님 앞에 설 때는 아무런 역할도 효과도 없을 것입니다.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는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니까요. 천국을 대망하며 우리의 어깨를 무겁고 딱딱하게 하는 겉 휘장을 날마다 벗어야겠습니다.
다시 말라리아 얘기입니다. 파송교회인 내일교회에 긴급 철야기도 소집령이 떨어졌습니다. 더불어 약을 바꾸고, 의사 선교사님 집에 자원 입원(?)하는 난리법석을 떤 후에 말라리아는 회복세로 돌아섰습니다. 말라리아에서 회복될 때는 이상한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합니다. 꼬불쳐둔 된장 풀어 멀건 국물로 쾌차할 수 있었다는 선배 선교사님도 계셨는데, 저는... 갑자기 '보신탕'이 먹고 싶었습니다(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때는 다들 그렇게 불렀지요). 참고로 저는 이 음식의 적극적 매니아(mania)가 아닙니다. 아기를 가져 입덧이 심할 때 예상치 않은 음식이 먹고 싶은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요. 하여튼 대뇌의 전두엽에서 번개같이 떠오른 생각은 확신으로, 확신은 믿음으로, 믿음은 고백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어코 사단이 벌어졌답니다. 동역하던 선교사님이 기어코 개를 잡아 대령했습니다(참고로 우간다 사람들은 개를 절대로 먹지 않을 뿐아니라 경찰에 잡혀 간답니다 ^^)
이 자리를 빌어 그때 저를 위해 삶을 바친 '도꾸'? '쫑'? 이름도 가물 한 견공에게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