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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벧세메스로 향했다.


이곳을 향하는 내내 차가 오르락 내리락하며 굴곡진 언덕들을 타고 넘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평평한 길과 평원으로 바뀌었다.


이 곳이 바로 유다지파의 북쪽경계인 삼손의 고향 벳세메스(Bet Shemesh)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계곡까지는 차지했지만


이곳 평원에서부터 골리앗으로 대표되는 블레셋에게 내준 땅이다.


블레셋은 그레데 섬이나 에게 해의 여러 섬에서 이스라엘의 지중해 연안에


정착한 이들로써 ‘이주자’, ‘외국인’이라는 뜻으로 블레셋 사람이라 불려지게 되었는데


바로 이 말에서 ‘팔레스타인(Palestine)’이 유래 되었다.


이 해양민족들에 의해 히타이트 제국등 팔레스타인 연안의 도시들이 멸망했다고


여겨지며 여세를 몰아 이집트를 공격했으나 패한 뒤 팔레스타인 남쪽 연안에


정착하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가드, 가사 등의 다섯 도시를 설립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이주해 왔을 때 이미 철기를 소유하고 있어서


당시 청동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에 비해


훨씬 강력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수1:19)


당장 성경속에서 사울이 블레셋과 싸울 때의 정황을 봐도


이스라엘 중에 칼을 든 자는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 뿐일 정도였다. (삼상 13:19-22)


그렇게 늘 산지까지가 이스라엘의 몫이였고, 이 후의 골짜기와 평야는


블레셋의 차지였기에 바로 이 곳이 사사시대의 격전지였다고 볼 수 있다.


 





 


삼손과 딤나의 여인_ 그 아내의 일로 인해 블레셋과 격전을 벌일 때 역시


성경은 이 곳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슬퍼진다.


 



동족들이 에담 바위 틈에 있는 삼손을 찾아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지 않소?


그런데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일이 미치게 하오?” (삿15:11)


삼손과 딤나여인 사이의 옳고 그름에 대해 아직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그 일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라 성경은 말하고 있다. (삿 14:4)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을(그것도 세 번이나)


내려 그로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려 하셨지만


이스라엘의 가장 유력한 지파 유다마저도 그 일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양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


차라리 종살이 할 때가 더 좋았다며 애굽을 그리워 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결국 삼손은 자신의 동족에게 결박되어 끌려가기로 약속했고 블레셋에게 넘겨졌다.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 소리 지르며 마주 나올 때


또 다시 여호와의 영이그에게 임했고 그는 싱싱한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이게 되었다.


삼갈의 소 모는 막대기만큼이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무기가 당대의


최강 무기를 압도해 버린 사건이다.


(다윗이 시냇가에서 고른 돌맹이 다섯 개도 별반 차이없다.) (삼상 17:40)


 



삼손은 그로 인해 너무나 지쳐 목말라 죽을 지경이 될 정도로 지쳤다.


한 사람이 대적 천 명을 상대했으니 그는 숨 쉴 틈도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삼손이 천 명을 대할 때까지


삼손과 동행했던 유다 지파 삼 천명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친히 엔학고레라는 샘을 터뜨려


한 외로운 용사를 구원하고 계실 때까지도 동족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삼손의 이야기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교회와 우리의 모습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시대의 풍요로움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는 날마다 애굽의 부추와 마늘을


그리워 하며 스스로 흑암의 종이 되길 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잠시 받는 환난의 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낙심하지 말것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말하는 것이다. - 고후 4:16-18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예수님을 말하고 있고, 성경을 말하고 있지만


이후 우리가 살 영원은 없는 듯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교회의 성공을 수적, 영적인 팽창을 열매로 보지 않고


그것을 목적으로 보는 순간 우리는 주님으로 부터 멀리 떠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배를 가진 질그릇인데, 지금은 서로가 보배라 소리 지르는 형국이다. -고후 4:7


 



이 곳 소라 골짜기에서 삼손의 그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홀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책임져야만 했던 그의 무거운 어깨와


우리처럼 연약한 그가 스러질 때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세차게 임하는 장면이 바람 부는 황무지 터에 그려졌다.


 



주위를 걸어보니 이곳 저곳에서 고대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다.


여전히 수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이 고대의 수많은 격전지들은


다윗 시대에 이르러 결국 평화를 찾게 된다.



 




 


마치 가시넝쿨 사이로 핀 샤론의 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