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요셉이야기

 


 



재작년, 주인 아저씨가 우리집 옥상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곳인데 나는 며칠전부터 새벽에 그 곳에 머뭅니다.
요즘 조각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먼지가 꽤 많이 날려서 좁은 방에서 작업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직 새벽이 추워서 찬기를 막아주는 이곳은 내가 작업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공간이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은 언어다."

저는 말하는것이 서툴렀습니다.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줄도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하나님이 제게 겸손하지 못함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당신의 언어가 아닌 사람의 언어로 가르쳤듯,
내 언어가 아닌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겸손이라는 말로 내게 가르치셨습니다.
순종하는동안 다시 말과 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말하는 것이 서툴러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언어를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서툴러서
사진으로 내 말을 전하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늘 기도했습니다.
찍은 사진을 보고 나는 그 풍경을 기도합니다.
언젠가 티벳의 현지 사역자에게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자신을 박해하던 고향 사람들에게 지금도 이렇게 사진찍고
찍은 사진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나는 찍은 사진을 가지고
사방을 뛰어 다녔습니다.
내 언어로는 내 진심을 다 설명하지 못해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펼쳐 그들에게 보여주며 울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사진이 언어가 될 수 있고, 기도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언어의 형식은 아니지만,
우리의 몸짓과 일상과 인생까지도 누군가를 향한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의사소통이 되면
우린 그 사람의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히3:4)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심으신 창조의 형상들이 있습니다.
죄로 인해 그것이 왜곡되긴 했지만
(타락 또한 창조의 범위만큼 크고 광범위하며
또한 예수님의 구속과 회복 또한 그러합니다.)
그 왜곡이 하나님의 형상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안에 심으신 창조성이 있습니다.
창조의 범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광범위합니다.

아침마다 나는 그것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