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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그림을 그리며,
그림을 그리는 분들의 애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흔히 '미대오빠'라고 불리는 멋져 보이는 말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지요.
현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이어간다는 말은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도구들은 또 얼마나 비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요.

그림을 그리며 나는 수많은 감사를 경험했습니다.
밤이 늦도록 작업을 하다가 재료가 떨어지면
다음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밤 11시가 넘어서도 화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잠들어야만 하는 새벽시간이 물감을 건조시킬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감을 한 번이라도 칠해 놓으면,
다음 날 다시 그림을 그릴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늦은 방에 문닫힌 화방문을 열어주신 주인분께는 죄송하지만
고르고 고른 물감들이 결국 값싼 튜브물감 몇 개에 그치곤 했습니다.
사고 싶은 물감과 붓과 재료들은 가격이 너무 높아서 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물끄러미 쳐다보던 내 처지가 안되어 보였던지
주인분이 주섬주섬 몇 개를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비싼 오일스틱 몇 개와 필요했던 붓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고는 날듯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작은 일화 한토막이지만
이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모든 과정 가운데서 넉넉하게 내게 격려하셨습니다.

전시회를 열고 있지만, 오늘 또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4월에 이어 5월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쁜 일 중 하나는 잡지를 만드는 일입니다.
' 반창고( www.facebook.com/m.bandaid ) ' 라고 이름지은 이 잡지의 성격은 
의사들의 이야기와 일반인과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한 꼭지가 얼마전 다루었던 무경이의 이야기입니다.
무경이는 소아난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무경이의 하품하는 모습만으로 감사함을 느낄 정도입니다.
너무나 큰 절망은 이렇게 작은 일상에도 감사를 발견하게 만듭니다.
얼마전 무경이 어머니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첫 대목에서 가슴이 짠했습니다.

"..계속 받기만 해도 되는지....
지금까지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래도 도움주신다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직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예의상 한 두번 거절할만한데,
그 도움을 물리치지 않고 단호히 받겠다는 글에서
어머니의 뜨거운 모성이 느껴졌습니다.
무경이는 아직까지 전혀 움직이지 못하지만
난청까지 있어서 보청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필요들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잡지 발행 기념식을 6월 중순 즈음에 가지려고 합니다.
그 날 여러 사람들을 초대할텐데, 내 사진과 그림 한 두점을 경매 하는 시간도 가지려고 합니다.
선물처럼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니, 그 선물을 어떤식으로 나눌까를 매일 모색하고 있습니다.
잡지 발행 기념식 때 무경이 어머니도 초대하려고 합니다.
경매할 그림으로 오늘부터 틈틈히 무경이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얼마 후에는 탈북자들을 돕기 위한 전시도 가지려 합니다.
그밖에 여러가지 비밀스런 전시들도 있습니다.
오늘도 화방에서 캔버스와 물감 몇 개를 골랐습니다.
여전히 갖고 싶은 도구 대신 조금 값이 싼 것들을 골랐습니다.
하지만 기쁜 선물처럼 내 그림이 씨익 웃으며 걸어가
사방으로 악수하고 토닥거리며 위로하는 꿈을 꿉니다.
내게 그림은 선물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얼마나 경이롭고 감사한 일인지요.
전혀 자격 없는 사람을 통해 아버지께서 이 일을 시작하셨다면 내 몫은 역시나 순종입니다.
순종을 통해, 우리의 모든 숨결속에, 일상 속에 빛이 비추어 진다면
내 그림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빛을 나눠줄 수 있겠지요..

_ 전시회를 여는 날 새벽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날 새벽에 아내가 그림 그리는 내 모습을 사진 찍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