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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제가 참 좋아하는 분이 계십니다.
아랍어, 불어, 영어, 한국어. 4개국어에 능통하신
그리고 수많은 고급 기술과 학력을 가지신 그 분은
두 아이의 아빠로, 아내의 남편으로 아프리카의 어느 구석에 살고 계십니다.

그 가정과 함께 보낸 시간이 가끔 생각납니다.
비염이 심한 아이의 코에 손을 대고 매일 아침마다 기도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가끔 그 분으로부터 편지가 날아옵니다.
벌써 두 달 전에 읽은 편지이지만,
곁에 두고 싶어서 책상 옆에 붙여 두었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 실존적인 고민이었기에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나누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일상의 시간은 작은 편지 하나 타이핑 하게 놔두지도 않습니다.
바쁜 일들 잠시 내려놓고, 일부분이라도 나누려고 합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이브라힘 입니다.)
무슬림 가정에서 꼬리뼈가 없는 장애아로 태어났습니다.
아주 가난한 가정이었지요.
아버지는 어디론가 가셔서 없고 어머니는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여 다른 곳에 살고
아이는 할머니의 손에 자라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이브라힘 보다 한 살 어린 아이를 출산하였꼬
그렇게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웃음 가득한 아이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걷지 못하고 기어서 다니는 이브라힘은 늘 웃음이 가득하였고 늘 행복해 보였는데
먹지 못해서 늘 배가 고프기만 한 것 같아
한 번은 먹을 것을 가지고 가 주었는데 정말 엄청나게 빨리도 먹어 버렸습니다.
그 아이를 보면서 전 입양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입양을 목적하기 보다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저희 집에 데리고 와 잠시 살았습니다.
그때 마다 이브라힘은 즐거워했고 어려운 아내의 훈련을 이겨 내어
작은 플라스틱 의자를 잡고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먹을 것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통통하게 살도 찍고 식사시간이 되면 먼저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하고 기다리고 하고
기도가 끝나면 아멘을 크게 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용변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보내면 아이는 살이 말리 있고 그래서 또 집으로 데리고 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브라힘 집에서는 저희 보고 이브라힘을 데리고 가 키우라고 간절하게 말하기도 하여
법적인 상황을 확인해보니 외국인 집에서 현지 아이가 자라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이브라힘이 가끔 저희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그쳐야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가정은 이 아이를 사랑했고 보살펴 주길 원했습니다.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아이의 신장에 결석이 가득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을 어떻게 제거할까 고민하면서 약도 먹이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습니다.
로이이라는 의사 선교사님께서 아이의 수술을 도와주기로 했고
카메룬으로 보내어 수술을 하기로 하여
이런 저런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나서
우리는 이브라힘을 카메룬의 응가운데레 라는 도시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수술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일차로 오른쪽 신장을 수술하여 결석을 제거했습니다.
결석은 크고 작은 것이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요?
수술 후,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온 이브라힘은 밝아 보였고 웃음을 가득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잘 먹지를 못하고, 소변을 작은 파이프로 받아내야 했고
수술 한 곳을 소독 해야 했습니다.
얼마 후 이브라힘은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보내는 마음이 너무 아프기만 했습니다.
수술을 하러 갈 때는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사진을 찍고 기쁘게 병원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시골집 갈대잎으로 엮어서 만든 집, 먼지 펄펄 나는 그 곳에서
이브라힘이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아.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때 전화가 왔습니다.
이브라힘이 아침에 눈을 감았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브라힘이 죽었다는 소리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사유를 듣기 위해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었고
누구 하나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장애를 가진 이브라힘을 모든 가족이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너무 분노가 나고 화가 났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7살이 넘은 아이의 몸무게가 9킬로도 되지 않은 채 가난과 배고픔으로 살다가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은 것이 너무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내 자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너무도 내 마음을 사로잡아
죄책감이 크고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이브라힘을 위해 예배 하면서도 분하고 원통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슬림을 주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이렇게 마음 아파야만 하는 것인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는데 왜 하나님은 이 아이를 데려가셨을까?
이렇게 귀엽고 순진한 이브라힘을 힘도 없고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아이, 꼬리뼈가 없어 키가 자라지 않는 이브라힘..
힘 없이 늘 외로운 이 아이를 왜!.
살리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왜 하나님은 이 아이를 데리고 가셨을까 생각하면서
난 힘 없는 사람이란 것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브라힘이 살던 마을을 가보았습니다.
여전히 이브라힘이 없는 마을은 한적했고
아이들은 갈대로 만든 작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브라힘도 그 움막에 있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공부하고 소리치고 웃고 해야 하는데
마음이 아프기만 했습니다.

이브라힘을 왜 주님은 아무 말 없이 그 어린 아이를 데려 가셨을까요? ....

...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그 곳에 학교를 짓기로 했습니다.
고통 없고 행복한 학교 교육으로 무지를 깨우치고 이브라힘 같은 고통의 아이가 없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그런 학교를 짓자. 
그 학교 이름을 이브라힘 학교라고 하자.
마을 주민들은 모두가 환영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지금 벽돌을 만들고 있고 모래를 퍼 나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