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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얼마나 의외의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땅을 얻기 위해 땅을 포기하라니요.
더군다나 그 땅은 빈 땅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12:6)
또한,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아는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자신을 '어린 아이'일 뿐이라고,
80세의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고 항변했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때가 가장 옳은 때입니다.
 
며칠전, 한 후배를 만났습니다.
"괜찮아."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을 따라 이 말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이 말에 후배는 눈물을 후두둑 쏟아냈습니다.
몇 년전, 기도중에 주님은 후배에게 당신의 비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몇 년이 지나도 좀처럼 열리지 않는 현실의 문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점차 굳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 관념적이라 여겨집니다.
주님은 주님일 뿐,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려움과 싸워야 합니다.
두려움이라는 상대도 믿음을 지키는 것 만큼 쉽지 않습니다.
이 인생은 내가 책임질 만큼의 만만한 무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후배가 눈물을 그치고 난 뒤에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낙담해도 된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돌이켜 힘을 내자.
주님의 우리를 향한 구원을 믿는다면,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낙담하지 말자. 주님의 구원보다 크지 않는 일에 낙담하지는 말자."
우리가 만나는 모든 낙담은 사실 우리의 구원보다 크지 않습니다.
 
주님은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개역개정에는 원어를 다시 옳게 바꾸어 표현했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12:2)
근심많은 우리에게 당장 손에 잡힐 무언가를 주시면 우리는 낙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다 큰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손에 복을 쥐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존재 자체를 복되게 하신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언젠가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기 위해 분주할 때가 있었습니다.
당장 우리 가족들의 생계를 생각해야 할 가장이
아프리카의 친구들을 돌보는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아무리 주님께서 주신 감동이 있다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온당한것인가?’
정말 많이 고민했던 질문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답이 바로 이 본문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넘쳐서 남은 것으로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로가 되어 흘려 보내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서있는 자체로 그 풍경이 복이 되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작년, 미국에서 6남매의 어머니, 정한나 사모님을 만나서 교제했습니다.
홀사모 사역을 하시던 그 분이 내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돈이 다 제 돈이라 걱정없어요."
쉽게 말씀하셨지만, 결코 말하기 쉽지 않은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돈이 다 제 돈이라고 말하려면,
그 전제로 내가 가진 돈도 주님의 것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이 말이 진실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코 알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75세 된)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12:4)
그가 바로 우리의 믿음의 조상중 한 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