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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학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점수에 욕심은 없었지만 성적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구약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은 학기중에 네 번의 쪽지시험을 치뤘습니다.
쪽지 시험은 앞 줄과 뒷 줄을 나누어서
앞 줄은 책을 덮고, 뒷 줄은 책을 펴서 시험을 쳤습니다.
당연히 앞 줄은 만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위험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반면에 뒷 줄은 기본점수는 받을 수 있었지만 몇 점의 핸디캡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네 번의 시험중 세 번의 좋은 점수를 합산한 점수를 사용하는게 교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난 이미 세 번의 시험을 치뤘고,
점수에 별 욕심이 없어서 네 번째 시험은 빈강의실에서 책이나 읽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의실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었습니다.
이 교수님은 마지막 시험에 맨 앞자리에서 시험을 치는 사람들은 무조건 만점을 준다는 얘기입니다.
지금까지 매 년 그렇게 해왔지만, 문제는 교수님이 우리에게 직접 이런 언급을 하신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풍문을 믿기로 했습니다.
시험에 참여할 생각이 없어서 아무 공부도 안했지만 맨 앞 자리에 앉기로 했습니다.
정말이지. 빈 답안지를 드러내고 앉아 있는건 고역이었습니다.
교수님과 조교들이 시험 감독을 하며 내 앞을 걸어다니는데
답안지에 아무것도 안 쓰고 앉아 있으려니 벌거벗은 것 같아서 땀이 삐질삐질 흘렀습니다.
하지만 나는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성적은 아무래도 좋지만, 교수님이 매 학기마다 그런 방식을 적용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시험해 보지 않으면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강의실에서도 그 풍문을 많은 사람들이 들었지만
결국 빈 답안지로 맨 앞자리에서 시험을 본 사람은 나 혼자였습니다.

시험 결과는 시험을 친 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노력한 수고에 상응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말그대로 은혜로 만점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나의 일관성을 믿고 순종한 값으로 만점을 줬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한 사내가 길을 가다가 정말로 낡아서 부서질 것 같은 다리를 만났습니다.
밟으면 부서질 것 처럼 보이는 다리 앞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며 신뢰할만한 이의 보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다리는 이미 몇 백년전부터 이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부서지지 않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 다리는 튼튼합니다. 내가 책임집니다.'

사내는 그 보증을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그렇구나. 다른 길은 없구나. 
이 다리는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만 튼튼하구나.'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내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다리 저편에 도착하기 위해 아주 먼 길을 찾아 떠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10:9)

하지만 믿음이란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성경은 지적 동의만을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행함과 함께 작동합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게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2:22)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리가 있습니다.
벌써 긴 세월동안 위태한듯이 서있습니다.
그 길은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도 적습니다. (마7:14)
하지만 그 길은 견고하며 더군다나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이 보증하셨기 때문이며, 예수님이 그 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