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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아내는 온유를 데리고 교회아기학교에 갔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소명이를 짧게 돌보지만
아기를 안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요.
다행히 사과 갈아서 먹인 후, 소명이는 혼자 잘 놀고 있어요. ㅎ

#1
오늘 본문에서도 모세는 여전히 하나님의 소명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말합니다.
"제가 입이 어눌한데 어떻게 바로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 (출6:30)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만났을 때부터
줄곧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앞 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다.
너는 내가 네게 말하는 모든 것을 이집트 왕 바로에게 전하여라." (출6:29)

모세에게는 말하는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나 봅니다.
모세의 변명을 제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8년전 어느 콘서트에서 마이크를 잡은채
자기소개를 하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정말 아무 말도 못한 채 마이크를 건냈지요.
그 콘서트에 아내도 함께 있었는데 지금까지 이 일로 약올리곤 합니다.
그 후로도 저는 '언어장애'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말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다른 것을 명령하셨으면
모세는 아무 말 없이 따랐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모세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셨기에 모세는 계속 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는 똑같이 변명합니다.
다른 부분이 아니라 바로 그 부분을 순종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 '잘' 하는 것을 요구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네게 말하는 모든 것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말을 덧붙이거나 빼버리지 말고 그저 하나님의 말을 옮기라는 뜻입니다. 
 
나중에 출애굽을 한후, 모세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가데스라는 곳에서 반석에 대하여 물을 내게 됩니다.
하지만 백성들과의 다툼에 대한 분노로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그동안 모세의 행적과 순종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 행동을 통해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결과입니다.
이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민20:12)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원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원했던 물은 반석에서 '많이' 흘러 넘쳤지만(민20:11)
하나님의 거룩함은 나타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른 모세가 만약
대단한 협상전문가라서 바로에게 설득력있게 말했다면
바로는 처음부터 좋게 수긍했을까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원하신 것은
지금보다 말을 잘하는 것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모세의 착각은 자신이 지금보다 더 우월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야 바로를 설득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더 나아가 구원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군대'라고 부르십니다. (출6:26)
애굽의 종노릇 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신의 말 그대로 연약한 모세까지도 하나님은 당신의 군대라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오합지졸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훈련된 전투부대로 보았습니다.
이후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살피면
줄곧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군대라 여기십니다.
 
모세의 때부터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 이스라엘은 정말 군대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의 첫 번째 성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두 번째 지도자 여호수아는 묻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모든 관심은 여리고성 싸움에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데 온 힘을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칼을 찬 사람의 대답은 의아스럽습니다.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하든, 여리고를 위하든, 이 둘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사람의 대답은 둘 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수 5:14)
 
이 대답 앞에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이지만,
정말 이스라엘을 이끄는 사람은 여호수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군대의 대장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이 이방들처럼 왕을 구했습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삼상 8:19)
 
이에 대해 하나님이 슬퍼하셨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신 것입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모세는 반석 앞에서 물을 냈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여리고성 앞에서 전쟁에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앞세워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 가운데 하시는 말씀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은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교회라 말합니다.
광야교회를 인도한 것은 모세가 아닙니다.
아론과 장인 이드로도, 여호수아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불평불만과 모세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광야교회를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의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를 인도하시는 분은 피 값 주고 사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군대 대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우리, 있는 그대로 당신의 백성, 군대로 불러주십니다. 
 

#3
예수님이 대장되시면
군대는 더이상 연약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