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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바쁜 주말을 보냈다.
토요일 오전에 촬영 하나가 있었고
피콕에서 제작해 준다는 작가앱 관련 자료를 주말까지 준비하기로 했으며,
토요일 저녁에 젊은이교회서 특강 하나를 맡았다.
주일에는 소명이의 유아세례가 있고,
오후에는, 지역장이라는 직분을 맡아 모임을 인도해야 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에 친구로 부터 연락이 왔다.
대구에 사는 고향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결혼식은 몰라도 장례식은 가야 했기에
서울에 사는 친구와 함께 밤 시간을 차로 내달려 대구에 도착했다.
친구 어머니는 우리를 보시고 반가움에 눈시울을 붉히셨다.
긴 시간을 어머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당신 스스로도 잘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짠하더라.
내려온 수고가 어머니를 본 순간 씻기는 것 같았다.
다시 서울에 도착해서 새벽 4시가 되서야 잠들었다.

친구와 함께 대구를 오가는 긴 시간동안
주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직장생활도 힘들고, 장사하려면 돈이 들고 아이들은 크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염려가 스물스물 밀려왔다.
이것이 현실인데, 나는 너무 대책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음날 저녁 젊은이교회서 특강을 하고 나니
감사의 표시로 신세계상품10만원권을 받았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늦은 밤 이마트를 갔다.
사고 싶었던 것 다 사라고 말했다.
10만원으로 사고 싶은 걸 얼마나 많이 사겠냐마는
(결국 3만 몇천원치 사고 돌아왔다.)
사실, 아내도 통장의 잔고가 없어서 염려하던 차였다.

사람들의 염려처럼, 아내의 염려처럼, 나도 똑같이 염려하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내 길을 걸어가는 것에 대해 
'네가 염려하는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 위로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내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어도 최소한 염려는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염려는 믿음의 반대말이라고들 한다.
염려 하지 않는다고 쌀이나 옷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염려 한다고 무엇이 더 생기겠는가?
염려하는 대신에 나는 주님을 의지하리라.

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놀랄만큼 하나님은 실제적이시며 구체적으로 나와 함께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나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믿는다.
그것을 믿는다면 그 연속선상에 있는 모든 사건 또한 믿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내 삶에 계획을 가지고 인도하심을 믿는다.

다윗의 고백처럼 '주의 인자가 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내 모든 상황보다, 내 가장 가치 있는 것보다 주님의 인자가 크고 놀랍습니다.
그 실패하지 않는 놀라운 사랑이 나를 둘러싸고 있어 나는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