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요셉이야기

 


 


봄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마지막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바로는 여전히 완강하게 버티어 서있습니다.
이제 세번째, 네번째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적들을 따라하던 바로의 요술사들도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 항복하며 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8:19)
하지만 바로는 요술사들의 말도 듣지 않고 그 마음은 더욱 완악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맞서서 싸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도 거듭된 재앙으로 인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세에게 타협안을 내기 시작합니다.
바로도 재앙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값싼 노동력을 잃기도 싫습니다.
하나님은 두렵지만 손해를 보는 것은 더더욱 두렵습니다.
그보다 나의 고집을 꺽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애굽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들의 현현이 바로라고 여겼습니다.
바로는 애굽의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바로는 모세를 회유하기 시작합니다.
예배가 목적이라면 광야가 아닌 애굽에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도록 광야로 내보내 주겠지만 너무 멀리 가선 안된다.
하지만 한 나라의 최고권위의 타협안을 모세는 놀랍게도 거절합니다. 
 
바로를 처음 대면했을 때 모세는 자신의 말처럼 겁많고 연약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감히 바로의 타협안을 거절할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바로의 협상안을 거절할 뿐 아니라
왕궁을 떠나오며 충고까지 곁들입니다.
"바로께서 명심하실 것은 이 백성들을 보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하는 일에 더 이상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출8:29)
모세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하며 내가 원치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묻기를 꺼립니다.
그 사항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범답안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범답안을 따르기는 싫습니다.
내가 묻는다면 하나님은 대답하실 것이고
그 대답을 듣는다면 나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듯 순종해야 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럴바에 묻지 않으면 듣지도 않아 면죄부를 얻을거란 얄팍한 속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관계하면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그 분이 얼마나 선하시며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알게 됩니다.
그저께 젊은이들과 작은 기도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마침 기도를 맡은 한 청년은
"아버지, 아바 아버지, 아빠 아버지.." 를 전율하며 불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작은 빛에 조금이라도 노출된다면
그 이름을 부르는 감격으로도 말을 잇지 못할 것입니다.
때론 이해되지 않는 방법으로 말씀하시지만 그 분의 하시는 일은 옳습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 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눅 11:1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뱀이 아닙니다.
그 과정이 때론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십니다.

이 싸움은 모세가 우려했던 것같은 바로와의 능력대결이 아니었습니다.
언제일지 그 구원의 날을 모세와 사람들은 선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완악함과 완고함도 이미 아셨으며
반복되는 재앙을 통해 여호와은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명확한 청사진을 이미 가지고 계십니다.

봄이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입니다.
하지만 봄입니다. 추운 겨울이 아무리 버티어도 이미 봄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으로 이미 이 땅에는 빛이 임했습니다.
어둠이 가득한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 어둠은 걷히게 마련입니다.
바로의 마음이 아무리 완강해도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십니다.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와, 이스라엘과 나라와 역사 가운데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신실하게 이루어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