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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사진전을 끝내고 여러 부서에서 간사님께 제 연락처를 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각 부서 사역에 도움을 구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간사님은 보호차원에서(?) 끝끝내 연락처를 넘겨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십이 넘으신 권사님이 보안망을 뚫고는 연락해오셨습니다. ^^
 
당신은 병원심방사역을 매 주마다 나가시는데,
권사님의 바람은 두 가지였습니다.
환자들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조금 건강한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주고 싶다는 것과,
이번에 전도로 환자 몇 분이 세례를 받기로 했기에 기록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심어린 마음에서 진정성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진심은 충분히 사람을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그 진심속에 주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누워 계신 환자들은 꽤 중증이신 분들이었습니다.
오늘 세례를 받을 고흥수님은 가만히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병실에서의 따뜻하고 조용한 세례식.
이 고요한 시간
환자분이 처음 마음의 문을 열었던 일을 회상하며
권사님께서 제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병실을 들어가는데
병실이 방안처럼 너무 깨끗해서 신을 신고는 못 들어가겠다며
신을 복도에 벗어두고 병실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목사님의 태도를 보고 고흥수님은 처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풍경을 보며 우리의 태도를 생각했습니다.
 
기독교 선교학에서 사용해온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가 토착화이고, 하나가 상황화입니다.
이 둘이 목적이 되면 복음이 훼손될 수 있지만,
이 둘의 목적이 복음화라면 주님께서 열매 맺으십니다.
우리의 태도가 복음보다 우월할 수 없지만, 주님은 그것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복음의 메세지 뿐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그 태도까지도 주님이 주신 감동이겠지요.
모든 순간에 양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론 사자의 포효가 필요하겠지요.
절묘한 주님의 때를 쫓아 행하는 우리의 태도를 통해서도 주님은 일하십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9: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