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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세 아들의 이야기를
성경이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함과 같은 자녀가, 노아와 같은 아버지가 이후로도 많았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홍수심판이후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첫번째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이야기는 역사적인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을 조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갯벌같은 세상에서
노아와 자손들은 농사를 시작했고
생육하고 번성할 것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따라 놀랍게도 포도나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그 열매를 먹고 취하여 장막 안에 벌거벗은 아버지의 하체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저 지나치며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적 표현으로는 관찰하고, 주목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함은 자신의 두 형제에게 아버지의 수치를 알렸습니다.

홍수심판은 죄악이 관영했던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탁월한 의로움이 그를 구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이후 행적과 벌거벗음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노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벌거벗음을 가리려고 옷을 입은 것과는 반대로
노아는 벌거벗었습니다.
여기서 노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죄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으며,
함을 비롯한 그 가정 또한 이 문제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죄를 같은 선상에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분명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특별한 죄악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을 향해서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소리쳤습니다.
또한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음행하는 이를 향해 평화의 창을 던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함이 아버지를 향해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취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함과는 비교될만큼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수치에 대해 다르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셈과 야벳은 놀라울만한 축복의 예언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때에 대해 경고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부모를 거역한단다.." (딤후3:1-2)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음행과 폭행과 같은 죄악에 대해서는 충분히 심각성을 인식합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결과로써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 대해 하나님은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27:16)고 엄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고르반_ 하나님께 드릴것이라고 말하면,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라도 거절할 수 있다.-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로 사역에 대한 무게는 싣지만
그 말로써,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변명을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고르반이라는 말처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로, 마땅히 부모에게 드릴 것에 대해 거절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부모님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말 한 마디. 사랑한다는 말을 바라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옳은 일입니다.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약속이 보장된 첫 계명입니다.
그 약속은 '네가 하는 일이 다 잘 되고 이 땅에서 장수 할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엡6:1-3)

지금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 중 하나는
먼저 용서를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 많은 분들이 부모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기계적으로 완전하게 제하여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주님의 놀라운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 아픔의 깊이가 깊을 수록 그렇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왕이 되시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왕이 되었을 경우에는 그 아픔은 나를 찌르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도구로 나를 드리기 위한 시작으로 용서를 말하고 싶습니다.
그 첫 걸음으로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 주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아래의 글을 입술로 소리내며 기도해주세요.

"주님, 우리 부모님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부모님의 지난 과오를 생각합니다.
노아가 벌거벗어 지은 죄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으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은 것처럼
내 부모들의 벌거벗음을 주님께서 입히신 새 옷으로 덮길 원합니다.
이제 그들의 과오에 대해 비난하려고 관찰하고 주목하는 일을 멈추겠습니다.

나는 오늘 그들을 용서하길 원합니다.
내 이성으로도, 내 감정으로도 그들을 용서할 수 없지만
내 안에 왕으로 계신 주님의 마음에 순종함으로 그들을 용서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일하세요.
내 안에, 그들안에서 주님 일하세요.
왕으로 일하여 주세요.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