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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김치찌게를 먹겠다고 돼지목살을 사러 나왔습니다.
마트까지 가는 길에서 청년 두 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라며 마침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며
길에 서서 몇 가지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내가 답해줄 수 있는 답과 그렇지 못한 답이 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지만
요즘은 마무리해야 할 게 많아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하지만 길에서 이런식으로 만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버지의 꼼꼼한 연출력이라 생각했습니다.
결국 내 방식대로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과 함께 마트로 고기 사러 가는 길을 동행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청년은 좋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10년간 그림을 그리지 않은채로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그림을 그려볼 것에 대한 마음이 있지만
그 마음 못지 않게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 주된 고민입니다.

그 두려움이 생계에 대한 것이라면
나는 원론적인 답만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아주 소수의 유명한 작가 외에는 
이 부분에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믿고 있는 답을 말한다면
마태복음 6장 후반에 있는 말씀들입니다.
너무나 관념적이지만, 우리 안에 실제하시는 주님을 믿는다면
그 분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 두려움은 무엇을 그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는 믿음을 가지기 전이라 차라리 자유로웠는데
지금은 무엇을 그려야 하느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이외의 것들을 그릴까봐 말입니다.
사실 모든 것을 그려도 된다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그리게 하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쉐퍼가 이야기한 것처럼 성경적 세계관 속에는 장조 뿐 아니라 단조에 속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며, 기쁨과 즐거움에 속한 것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슬픔과 고통의 문제까지도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주제가 우리 개인의 것에 국한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녀의 소중한 것과 아버지의 관심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대한 질문은 사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마침 방역차가 온 동네에 뿌연 소독약을 가득 뿌려댔기에
빌라 아래층에 피해서 더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재능으로 치면 나는 가장 미천한 사람중의 한 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귀한 분들이
그들에게 주신 언어와 각종 모양들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그림 그리고 노래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의 김치찌게는 너무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