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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수원에 살던 무경이가 산본으로 이사했습니다.
반창고에서 준비한 유아물품들을 엘리베이터로 옮기는 동안
무경이의 무거운 의료기계를 옮길 때면
빌라에 살던 때보다 훨씬 수월하겠단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무경이만 보고 갈거라고 거듭 말씀드렸는데
이른 시간부터 음식을 장만하셨는지 맛난 냄새가 복도까지 흐릅니다.
성호 어머니도 거의 비슷하게 이 곳에 도착하셨습니다.
아쉽게도 성호는 전염성 바이러스가 있어서 함께 하진 못했습니다.

무경이는 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쌍둥이 동생 석빈이 보다 몸집도 커졌고
하품만 할 줄 알았던 무경이가
이제 눈동자를 움직이고 발가락도 움직입니다.
"모두들 응원해주신 덕분에 무경이가 많이 좋아졌어요."

아가들이 태어나서 일 년이 넘도록 누워만 지내다 보니
매일같이 마사지를 해주지만 몸에는 욕창이 생기고
뒷통수에는 땜빵처럼 탈모가 생긴다고 합니다.
무경이 어머니와 성호 어머니가 웃으면서 들려주는 이런 아픈 이야기는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네들에게 참 평범해 보이는 일상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느끼는 아픔이 참 상대적이다 싶습니다.
너무 심각한 아픔 앞에 탈모나 욕창 정도는 이들에게 애교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어제가 무경이 어머니의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생일선물도 없이 쳐들어간 우리는 배부르게 맛난 음식을 해치웠지요.
후다닥 와서 신세만 지고 떠나는 우리에게
무경이 어머니는 자기도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시켜만 달라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는 길에 무경이 어머니의 말씀을 계속 되씹게 되었습니다.
세 명의 자녀를 돌보느라 정신없을텐데 무엇을 도우실 수 있을까.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아마도, 분명히 무경이 어머니는 분명 누군가를 도울 일이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무경이를 돌보면서 느낀 수많은 아픔과 동시에 받게된 위로들은
치명적인 아픔으로 울고 있는 누군가를 위로하게 될 것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입은 상처는 상처 입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약한 구석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누구나 약한 구석이 있고, 누구나 서로 도울 수 있기에
우리는 서로 누군가의 반창고가 되어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픈 무경이와 성호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무경이네 어머니는 반종교(과연 신이 있다면 왜 이런 고통을 허락하셨겠냐며 )였다가
감사하게도 우리가 함께 만난 시점부터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기도할 적마다 눈물이 흐른다.' 하십니다..
작은 거실에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눈물과 아픔이 가득했던 병실에 함께 하셨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경이를 통해 아버지의 나라를 만들어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기도한 현정이가 내게 그 감동을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약한 무경이를 통해 우리가 서로 연합하고 기도함으로
그렇게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 같아요."
당신의 나라는 이렇게 가장 약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