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요셉이야기



승리했지만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했지만 아파서 통곡했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과 베냐민의 전쟁은 결국 이스라엘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2번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듯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끝까지 추격하여 진멸합니다.
베냐민은 단 하루만에 25000명의 전사자를 내었고,
살아남은 600명만이 광야의 림몬 바위에 숨어 목숨을 지켰습니다.

승리한 이스라엘은 벧엘로 가서 저녁때까지 소리를 지르며 울었습니다.
자신과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삿21:3)

그들은 베냐민 지파가 끊어지게 하지 않으려고
동족과의 전쟁을 마친 후, 다시 동족과의 전쟁을 벌입니다.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을 진멸하고
여기서 얻은 젊은 처녀 400명을 베냐민에게 보내게 됩니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베냐민 남자들에게는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실로에 온 200명의 여인을 납치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의 승리후 아파서 통곡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애통과 회개의 지점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울며 회개함을 통해 종교적인 모양을 갖추었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 애통은 자신의 잘못과 베냐민지파와 영혼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그들은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반복된 실수와 전쟁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실수를 시도합니다.

사사기 저자는 사사기의 마지막에 이 모든 사건을 결론적으로 정리해 말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21:25)

삼손이 딤나의 블레셋 여인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부모에게
"내가 그 여자를 좋아 합니다" 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말 입니다.
언어적으로는 '각자 그의 눈에 기쁜 것을 행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사사기 저자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정확하게 예견한 것 같아 보입니다.

카이퍼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을 신앙적인 큰 변화의 때라 말합니다.
시민 혁명으로 인해 1700년 이상 자리 잡았던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는
일반 시민에게 타도의 대상이 되었고 이것을 사상적이며 학문적으로 체계화 시킨 것이 합리성입니다.
모더니즘 시대의 열매인 합리주의는 오늘날 교회에 까지 미쳐 있습니다.
지성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옳다 여기면 그것이 선입니다.
(게다가 지금의 포스트 모던시대는 다양성을 중심으로 각자가 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신학자들은 인류의 지혜를 모으면 이 땅에 지상낙원을 세울 수 있을거라고 여겼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너무나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이런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깨뜨린 사건이기도 합니다.


각자 자기의 눈에 기쁜 것을 행하는 것 보다,
합리성에 따라 많은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행하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한 가지를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