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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예수님이 계신 곳에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안수하고 기도해주심을 바랐다.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왜냐하면 당시 아이들은 사람의 숫자에도 들지 못했을 정도로
사람으로써 취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나뵙길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었으며 주제넘는 짓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어 주셨다. (마19:15)

성경은 그 이후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예수님에게 친히 손을 얹어 기도를 받은
이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아이들은 예수님의 손길에 대해 기억조차 못할테지만
분명 그들의 인생은 퍽이나 아름다웠지 않을까?

그런데, 이 아침에 주님은 믿음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친히 만지심을 통해 이 아이들의 인생이 아름다울 것을 믿는다면
너는 그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지금 주님은 내 안에 계시며,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할 것이라 약속하셨는데 (요16)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 크게 칭찬하신 적이 있다.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서 괴로워 하고 있을 때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고쳐주시길 간구했다.
예수님이 고쳐 줄것을 약속했을 때
백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마8:8)

백부장의 집에 있는 하인에 대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주님을 구속하지 못한다.
나는 시간 속을 살고 있지만 주님은 시간 위를 걷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니 시간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백부장은 권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8:9)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모든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럼으로 그 권위로 말씀만 하시면
이 우주의 질서는 그 말씀에 순복하게 된다.
마치 백부장이 그 수하에 있는 이에게 명령하면 복종하듯 말이다.

예수님이 만지시고 기도하신 아이들의 인생이 아름다울 것을 믿는다면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을 때
이 기도는 아이들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과 같다.

내가 가장 소망하는 것은
이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입술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이다.
아빠와 엄마의 믿음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이 만난 하나님으로 자신의 인생을 드리는 것.
그것은 결코 속박이 아니다.
그 진정한 자유로움 가운데 이 아이들의 인생이 아름답길 바란다.

속박을 말하자면, 
율법의 계율을 정확히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로
하나님과 게임을 하는 것이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을 얻기 위해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를 물었다. (마19:16)

사실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자다.
젊었고 부자였고 관원이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이 청년을 우러러 봤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한 가지를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분명 그것을 가져야만 했다.
그래서 열심을 내어 계명들을 다 지켰다.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19:20)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마19:21)
예수님의 말씀에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여 떠나갔다.

그가 가지고픈 한 가지를 얻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수고한 모든 것을 다 놓아야만 했다.
그는 결정해야만 한다.
마치 가장 좋은 진주를 얻기 위해 모든 소유를 다 파는 진주장수처럼 말이다. (마13:46)
차라리 이 청년에게 아무것도 없었다면
예수님을 따르기 쉬웠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축복이라 여겼던 재물들이
도리어 그에게는 올무가 된 것이다.
지혜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이 청년에게 예수님은 모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는 모든 사람에게 관한 말씀이 아니다.
청년에게는 자신이 지금껏 모은 보화가 우상이었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고집과 부모와 형제와 사역이 그것이 될 수 있다.

그는 계명을 다 지켰지만
예수님이 그에게 원하신 것은 삶이었다.
나는 몇 년전까지도 사진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진이라는 도구를 넘어서 삶 전체가 의의 도구가 되길 원하셨다.
옳은 일을 하면 옳은 사람이라 여기지만,
옳은 일을 한다고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처럼 계명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계명을 다 지킨다고 해서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다.
영생은 그 계명의 주인이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지혜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복된 것임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