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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내가 프로포즈 한 다음 날, 명경에게서 메일이 왔다.

‘오빠 나 그 날, 기도하면서 회개했어요..
입으로는 늘 이런 기도제목을 간구해왔어요.
‘아버지, 이 땅을 살면서 눈에 보이는 축복보다는
하늘의 소망과 축복을 구하며 살고 싶어요.’

하지만 지난 일주일동안 분명히 깨달았어요.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를..
얼마나 잠재된 악으로 가득한지를
하나님이 분명히 알게 해주셨어요.”

명경은 그동안 수없이 고백했던, 그리고 찬양했던 제목과 가사였던
‘주님 한 분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라는 말을
얼마나 주문처럼 말했는지, 그토록 피상적이었는지를 생각했단다.
삶 가운데 실제로는 주님 한분만으로는 부족했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한 것을 회개하는 내용이었다.
거울에서 보듯,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 본 후
그 고백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조금 알게 된 것이다.

명경은 편지의 말미에
‘이제 우리가 어디에 살던지
궁궐이나 초막이나
아무 상관없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실 신혼집을 놓고  기도드렸을 때
주님은 이미 우리가 살 곳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감동을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셨다면
그 곳은 아마도 내 기준이 아니라 아내의 기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넌 어떤 집에서 살고 싶었어?”
“작은 거실이 있다면 소파를 놓고 싶었고,
주방이 있다면 작은 식탁을 놓고 싶었는데..
이젠 아무래도 괜찮아.”

몇 시간뒤 아내가 다니던 회사 직원이 급히 집을 내놓게 되었다.
그 직원은 몇 개월전에 결혼해서 신혼집을 꾸렸는데
급한 이유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득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집이 혹 그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장 우리가 그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명경과 함께 일주일간 수없이 집을 보러 다녔지만
언덕위에도, 지하방에도 우리가 살만한 곳은 찾을 수 없었는데
회사 동료의 집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신 그런 집이었다.

몇 시간전에 명경이 말했던 그 작은 거실과 주방이 있는 집이었다.
급히 나온 집이라 우리가 모은 돈으로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이미 수리와 도배며 장판과 장식이 다 되어 있는 준비된 공간이었다.
말그대로 몸만 들어가면 되는 꿈의 집..

집을 보고 나오는데
흥분해 있어야 할 아내의 표정은 생각보다 담담해 보였다.
“어때?”
“오빠, 나 지금 두근거리는 걸 참고 있어.”

마구 웃으면 이 행복이 떠나버릴 것 같아서 참고 있다는
아내의 대답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아내의 표현대로라면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쿵쾅거리고 있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상 도저히 대학에 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등록금이라고 돈을 내미셨을 때 가슴이 방망이질 쳤단다.
마치 그 때처럼. 태어나 두 번째로 쿵쾅거리는 이 두근거림.
하나님이 내 삶을 들여다 보시고 간섭하심을 느낄 때의 느낌이 아닐까.

우린 집 모퉁이 길 위에 서서 기도했다.
지금은 이 기분이 늘 한결같을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는 사람이다.
생애 두 번째의 쿵쾅거림조차 얼마 가지 못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지난 경험이 증명해주듯
새 학용품, 새 옷, 새 텔레비전, 새 자동차가 그러했듯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익숙해 지고 만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오늘의 감사와 아버지의 신실하심이다.

무엇이 손에 쥐어지든, 그렇지 않든
이 감사가 우리 생애 가운데 늘 고백되어 지기를, 한결같기를
어두워진 밤 길 위에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