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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작년 말, 하나님은 기독교미술이라는 새로운 길로 인도하셨다.


전문대학원에 원서를 준비하고 시험을 응시하는 동시에


논문과 티벳으로의 여정등을 함께 준비해 나갔다.


보름동안의 티벳에서의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전문대학원 등록금 납부하는 날을 맞아야 했다.


긴 이야기이긴 하지만 티벳으로 떠나는 것을 몇 가지 이유로 망설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이런 촉박한 일정과 비용이었다.


선교여행을 마치고 갑자기 5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 커다란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은행업무 마감을 십여분 앞두고 송금하게 되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자명했기에 나는 보이신 길 가운데 순종했다.


하지만 정말 우리 수중에는 가진 것 하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기도한 것처럼 돈이 하나도 없지는 않았다.


정말 푼돈들이지만 생활비 정도가 남아 있어서 말을 정직하게 바꿨다.


"아버지, 돈이 충분히 없습니다."'


하지만 그 충분히 라는 말은 인간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었다.


얼마나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부유할 때도, 빈곤할 때도 상관없지만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무게 때문에 위축되었나보다.


그럴 때면 지난 날의 여러 갈등과 선택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 번은 누군가 내게 스튜디오를 만들어 준다고 제의해 왔을 때도


우리 주님이 허락하시면 순종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시면..


제의해주신 사장님께 호기있게 거절하고, 도리어 기도를 해주고는 떠났다.


말씀위에 서겠다는 내 결정들은 현실과는 다른 것들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겠다는 내 결정들은 순진하고 어리석기만 한 선택들일까?


 


아버지는 내 마음에 만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비록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먹이시고 기르시는 손길을 믿었다.


아애 지금이 전쟁의 상황이었다면 오늘 먹고 살리는 주님의 손길에 귀기울였을 텐데


이 풍요로운 시대는 나를 끊임없이 압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신실하시다.


언젠가 우리집에 찾아온 손님이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집에는 없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우리의 욕심 때문이긴 하지만 부끄럽게도 갖고 싶은 것 하나도 가지지 못한 것이 없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아버지께서 먹이시고 기르신다는 말씀은 진실이다.


주님은 진리되신 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과연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인생이면 주님만을 바라볼 인생인가?


 


나는 절대로 나를 믿지 않습니다.


주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주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절망적인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 절망이 더욱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으로만 즐거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