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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애굽의 노예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소명하신다.
하지만 왕자였던 40년 전과 달리 이제 평범한 목동의 삶을 살고 있는 모세에게
이 과업은 너무 두려웠다.
모세는 과연 자신이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의 자격이 있을까 의심한다.
그것은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적시했을 때 틀리지 않다.
두려워 거절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 싸인을 보여주신다.

모세의 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는 무서운 독사가 되었고
또 그 무서웠던 독사는 모세의 손에서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
죽을까 두려웠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던 모세의 손은
나병이 생겨 진짜 죽을 몸이 되었고
또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사람을 지으시고, 살게 하시고 만물을 만드신 분의 말씀을 따라
막대기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두려움 과 죽음보다 더 크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 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눅12:4-5)

예수님은 두려워 하지 말 것과, 진정 두려워 해야 할 것을 구분하셨다.
당신은 우리가 늘 두려워 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 두려워 하지 말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말 두려워 해야 할 대상이 누구신지를 말씀하셨다.
여기서 반복되는 말, 두려움(포보스)이라는 말은 경외함으로도 쓰이고 있다.
곧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후7:1)

이스라엘이 두려워 떨던 애굽사람들은
나일 강을 자신들의 생명의 신적 근원으로 여겼다.
그런 강이 한 순간에 피로 변해 죽음의 강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애굽이 정말로 두려워 해야 할 분은 막대기나 죽음, 나일강따위가 아니었다.

내 능력과 자격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진 연약함이나 상대에 대한 비교의식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된다.
내가 정말 두려워 해야 할 대상은 '그 분'이며
그 분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 있다면 나의 약함은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