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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드실 때
열 두 명의 제자들 중 하나는 예수님을 팔 것이라 말했다.
"나는 아니지요?"
가룟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물었다.
"나는 아니지요?"

가룟유다는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했을까
대제사장에게 받은 은 30에 자신의 양심을 판 것일까?
하지만 그는 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는 은 30을 돌려주려고 했다가
밭에 던져 버리고 목숨을 끊었다.
은 30이 탐나서 예수님을 팔아 해치웠다면
차라리 3년동안 예수님을 좇는 방식 외에 다른 길을 통해 돈을 버는 게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가룟유다는 은30에 예수님을 배신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그리는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열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3년동안 보아온 예수님은 비록 메시아적인 모습과 권위를 갖추었지만
그 이루어 가는 방식은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이렇게 하다가 이 나라는 도대체 언제 회복될 것인가?
로마의 압제 아래 있는 민중을 누가 구원할 것인가?

어쩌면 그는 유월절에 일어날 폭동까지도 예상했을지 모르겠다.
대제사장과 장로들도 민란이 날까 염려해서 유월절에는 예수님을 잡지 않으려 했다. (마26:5)
하지만 가룟유다의 생각에 유월절이야말로 혁명을 일으키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예수님을 바라봤다.
다른 제자들도 가룟유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수님의 장사를 기념하여 부어진 한 여인의 향유 옥합에
가룟유다 뿐 아니라 제자들은 분개하였다.
"왜 이렇게 허비하느냐!. 왜 이렇게 낭비하는 것이냐!!"
여인이 부은 향유 옥합은 적어도 삼천만원 이상하는 고가의 물픔이다.

하나님의 방식은 때로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아서
나도 제자들처럼 이렇게 질문하고 분개한다.

"왜 이것을 허비하느냐!" (마26:8)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마26:9)

제자들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그 분이 지금 무엇을 내다보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전에 온 선지자나 위인들과 같지 않다.
또한 예수님의 오심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긍휼을 베풀자와 같지 않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어두움이 뒤덮고 있던 이 땅에 빛이 침투한 사건이다.
이 땅을,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신 사건이다.
그리고 그 분이 오신 결정적인 이유를 성취하기 위한 때를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마26:38)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26:12)

제자들 누구도 주님의 사역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아는 자 없었으며
가룟유다는 자신의 방식으로 메시야의 때를 당겨보려 하는 것이다.

결국 가룟유다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파송된 큰 무리가
예수님께 도달했을 때 베드로는 칼로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귀를 떨어뜨렸다.
제자들도 가룟유다처럼 거룩한 전쟁을 예상했는 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 곧 벌어질 전쟁을 대비해서 칼을 차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베드로에게 말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26:52)

예수님의 방식은
가룟유다가 바라던대로, 제자들이 예상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있는" 분이시다. (마26:53)
당시 한 군단은 6000명의 군사로 구성되어 있다.
열 두 군단은 7만 2천 명의 군사들이다.
예수님은 당장에 하나님의 군사들로
이 긴장의 예루살렘 전체를 포위하고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마26:54)

가룟유다와 제자들은 무장봉기를 기대하고,
왕권탈환과 로마의 압제 아래 민중을 구원해 내리라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방식은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성경의 한 획과 한 획을 이루는 것이다.
액션영화처럼 눈에 보이는 스펙타클한 전쟁장면이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성취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사단과의 격전이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26:56)

제자들은 자신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사건전개에 당황했고
모두 도망가 버렸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마26:35)
불과 몇 시간전에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지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그들은 전쟁에 대비해 허리에 칼은 찼지만
보다 중요한 싸움에서는 무방비상태였다.
이것은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동일한 한계이다..
예수님의 절박함이 내게는 이만큼도 없다.

예수님의 전쟁은
무리들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와서 그를 붙들어 가는데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겟세마네에서 시작한 것을 제자들은 알지 못했다.
이 '겟세마네' 라는 곳의 뜻은 '기름을 짜는 틀'이란 말이다.
이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올리브 기름을 짜내는 것처럼 기도하셨다.
올리브를 짜기 위해 무게추에 무거운 돌을 달았는데
작은 돌을 달아 나온 기름은 가장 거룩한 기름으로 사용되었고
단계별로 무게의 무게를 달리 해서 기름을 얻었다.
올리브는 찌꺼기조차 버리는 법이 없어서 가장 무거운 무게추를 이용해서
나머지 한 방울까지도 짜내어 비누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눅22:44)

주님은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에서
올리브기름이 되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쥐어짜서
온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셔야만 했다.

"내 아버지여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마26:39)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마26:54)
주님은 이렇게 하심으로 성경이 말한 바를 다 이루신 것이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4-5)



주님, 내게 지혜를 주세요.
당신의 나라를 위한 전략을 주세요.
라고 기도하기에 앞서
예수님의 마음을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하겠다.
주님의 마음이 없으면
불과 몇 시간 전에 말한 헌신의 고백 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예수님의 마음이 없으면
그의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이것은 다 예수님을 위한 일입니다' 라는 마음으로
은 30에 우리도 그를 팔아버릴 수 있다.

예수님의 마음이 없으면
당신의 십자가의 길을 예비하는
여인의 수고에 대해 분개해버린다.
"왜 이것을 허비하느냐!"

...주님의 마음을 내게 부어주세요..

사진 _ 겟세마네의 기도하는 예수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