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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잠들기 전, 온 가족이 누워있는데
온유가 말했습니다.
"없다. 까까도 없고, 과일도 없고 호비(인형 이름)도 없다."

온유가 허망한 듯 말하는 것이 하도 기가막혀서 
아내와 한참을 웃다가
온유에게 하나를 더 가르쳐줬다.

"온유야 사실 우리 집에 내일 모레면 밥도 다 떨어졌어.
그러면 온유야, 우리 집에 없는 게 뭐지?"

"음.. 까까도 없고, 과일도 없고, 호비도 없고,  밥도 없어."

"그러면 없는 것 말고 있는 건 뭐야."

"움...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아기도 있고, 온유도 있다."

"그렇지? 아빠, 엄마, 아기, 온유도 있지? 그럼 우리 부우자네?"
 

지금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온가족이 동네 마트에 산책 나가서 과일이며 까까며 먹고 싶은 걸 사먹곤 하지만
몇 년전만 해도 겁이 나서 먹고 싶은걸 참고 참아야만 했습니다.

슈퍼에서 과일을 들었다 놨다 하며 그냥 지나치곤 했지요.
그러면 거짓말같이 며칠이 지나 찾아온 손님 손에 과일이 들려있었답니다.

신혼초에 한 번은 마트에서 딸기와 갈치와 화분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 날 불쑥 찾아온 손님의 손에 갈치와 딸기가
그리고 다음 날 찾아온 손님의 손에 화분이 들려있는 것을 보고 아내와 한참 웃었어요.

쌀이 다 떨어진 어느 날에는
하루 만에 자그마치 쌀 80Kg이 배달되어 왔어요.
우린 입이 떡 벌어져서 필요한 곳에 쌀을 나눠주려고 수소문했어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우리 주변에 쌀이 필요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더라구요.

우리 나라는 이만큼 풍요로워 졌답니다.
적어도 쌀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은 보기 힘들어 졌지요.
그럼에도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더없이 많아졌지요.

오늘 먹을 쌀만 있어도 감사했던 시절은 이제 다 지나버렸습니다.
오늘 나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이
내일도, 모레도 나를 인도해주실 것을 믿는다면
사실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정말 먹고 사는 문제로 절박한 시대 뿐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선 시대에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편 119편의 마지막 부분을 묵상합니다.
시편 저자를 핍박하고 괴롭힌 사람은 권력자였던 것 같습니다.
"권력자는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지만,
내 마음이 두려워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 뿐입니다." (시119:161_새번역)

눈에 보이는 권력자가,
나를 괴롭게 하는 자가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
정말 내가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나와 권력자를 지으셨으며, 우주의 질서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그 분의 말씀이야말로 가장 힘있는 것입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119:164)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함을 표현합니다.
저자는 하루 일 곱번씩, 곧 하루 종일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님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내 방식대로 살다가 잠깐씩 주님의 법을 내놓으라고 농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방향을 주님의 프리즘에 투과시켜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시 119:165)
이런 선언을 과연 어떻게 외칠 수 있을까요?
여전히 권력자에게서 핍박 당하는 시인이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장애물이 없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을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안이 바로 "샬롬"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내와 함께 큐티를 나누며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는
말씀 위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 없이 기도하면 늘 반복되는 기도제목과, 긴박한 중보기도들을 하게 되지만
함께 말씀을 나누며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언약 위에 서는 것입니다.
구약, 신약이라는 것은 언약이라는 말입니다.
샬롬은 이 하나님의 언약의 행위의 결과입니다.
이는 문제없음, 그저 싸움을 하지 않는 것 정도를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의미는 완전, 무결, 조화, 완성에 까지 나아갑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샬롬을 약속하십니다.
비록 시편저자가 권력자의 핍박 가운데 있고
내가 불확실성 가운데 서있는 것 처럼 보여도
우리가 수많은 문제를 안고 아파하고 있어도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님은 '문제없음' 정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의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주님은 이루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언약에 대한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