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요셉이야기


소명이 검사 때문에 오전에 병원을 다녀왔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나, 이번에 염려나 근심이 하나도 안 되었어."
"응?"
"온유와 소명이가 갑자기 아파서 입원까지 했는데도
하나도 염려가 안 되는 것 있지?
그냥 막연히 잘 될거란 생각을 한 것도 아니야.
정말 마지막 까지도 생각했거든.
소명이가 잘 못 되어서 죽는 것도 생각했어.

아이가 아플 적마다 내 마음도 아프고 힘들지만
그리고 만약에 죽는다면 내 평생에 소명이를 지독하게 그리워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혀 염려나 근심이 안되는 것 있지?
그건 어쩔 수 없어 조금 일찍 떠나 보내는 것 뿐이라는 생각을 했어.."

아내의 이 말들이 내게 큰 도전과 위로가 되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갈 인생에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우리는 반응하고 선택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상황에 죽음 보다 더한 고통이란 건 찾기 힘들다.
그런데, 죽음을 초월하게 되면 고통은 힘을 잃게 된다.

다시 말해,
사단은 우리가 인생을 움켜지려는 것을 가지고 시험한다.
놓치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것을 가지고 도리어 힘들게 한다.
하지만 내가 움켜지려는 것, 놓치 않으려 하는 것을 포기해버리는 순간
사단은 더이상 우리에게 달려들 근거가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 인생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길이신 예수님이시다.
엄밀히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에 대해서,
진리, 혹은 생명에 대해서 가르치러 오신 분이 아니다.
이전의 수많은 선지자들은 그것을 말하기 위해 왔다면
예수님은 당신 자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내게 인생을 가르치는 스승으로써 라기 보다는
내가 살아야 할 인생 그자체여야 한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소명이가 입원을 하고 아내가 많은 수고를 했다.
내가 온유를 돌보는 동안
아내는 만하루가 넘도록 소명이를 안고 의자에 앉아 버텨야만 했다.
5일간의 입원이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짧은 5일이지만, 마지막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신 해법이다.

비록 잠시의 이별은 너무나 아프겠지만
- 마치 작년에 온유가 비슷하게 아팠을 때
온 가족이 부등켜 안고 펑펑 울면서 아프지 말자. 다짐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염려나 근심의 차원은 아니다.

이것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신실하신 목자에 대한 믿음,
예수님이 이미 행하신 일들에 대한 믿음.
죽음, 그 이후의 삶, 부활..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