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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노트북을 메고 명경과 함께 성남시 구석 구석을 걸어다녔다.
우리가 결혼한 후 살집을 알아보기 위해서 였다.
며칠째 종일 걸어다녔지만 도무지 우리가 살 수 있는 집은 보이지 않았다.
명경은 그런 절망감 때문에 얼굴 가득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어느새 어둑어둑 해가 저물어 저녁이 되었고
하루종일 걸어다닌 덕분에 다리는 아프고..
나는 걸어다니는 내내 명경의 마음을 위해 기도했다.

나는 학교 앞,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서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의 여섯 번의 이사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발 디딜틈 없던 작은 방, 햇살 한 줄기 들어오지 않던 지하 방,
반 년이 넘게 물 새던 방..
어느 곳이든 나는 감사했고, 그 곳이 내겐 천국이었다.
초막이든 궁궐이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도해 주신 집이란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명경은 가족과 처음 떨어져 사는 신혼집이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모양이다.

나는 서울에서 이사를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간증이 있다.

곰팡이가 가득 핀 집에서 살던 때의 일이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아빠,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이렇게 기도했다가 금방 기도를 취소해 버렸다.
왜냐하면 곰팡이가 피어있고, 물이 떨어지는 집이었지만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 곳이 내게 과분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은 내 아빠이시니까, 내가 힘들 때 함께 힘드시죠?
그러니 아버지가 하시고 싶은데로 하세요.”
기도를 끝내자 한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금전에 하나님이 너 기도를 시키셨어.
너 혹시 지하에 살고 있지 않니? 너 빨리 이사가라신다는 감동이 있었어.”
“응? 어디로?”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으로..”
내 기도의 토시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나를 향한 아버지의 지극한 그 사랑..
  
그 뒤, 나는 정말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내가 소원하던데로 하나님이 귀기울이시고 기도를 응답하셨으니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전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나는 비 새던 그 곳에서 얼마나 기뻐하고 찬양했는지 모른다.
그 습한 방에서 하나님이 내게 가르치신 것은
어느 곳이든 하나님은 나를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이다.
이미 당신의 사랑을 보이신 분에게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누리느냐를 확인하는 척도는
좋은 집, 햇볕, 아늑한 거실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 공로 없지만 우리에게 은혜를 비추시는 그 분의 전적인 은혜 때문이다.

신혼집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명경과 함께
지친 몸으로 한 카페에서 쉬기로 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마. 하며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노트북을 메고 다녔다.
며칠동안 후배와 함께 명경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동영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노트북과 함께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아 주고 자리를 피했다.

명경에게 처음으로 쓴 영상메세지에 내 진심을 다했다.
내가 결혼하기 두려워 했던 이유를 시작으로
하나님의 아버지됨에 대해. 채울 수 없는 인간의 탐심까지.
청혼을 하며 보혈을 말하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도 같았지만
그게 내 진심이었다.

영상이 마쳐칠 즈음,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니 명경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었다.
그리고 준비한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이 작은 보석 1캐럿을 생산하기 위해서  250톤의 바위를 캐내야 한단다.
태어나서 처음 사본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결혼하기 전까지도 나는 명경에게 이벤트한번, 기념일 한 번을 챙겨준 적이 없었다.
일중독자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었던 대신에
명경에게는 말 그대로 빵점짜리 남자친구였다.

내가 전한 작은 진심에
명경은 미소지으며, 눈물 흘리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