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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둘째, 소명이가 제법 커서,
어젯밤, 옆집에 사시는 집사님에게 보행기를 빌려왔습니다.
보행기를 보자 딸 온유는 자기가 타겠다고 보챕니다.
긴 실랑이 끝에 결국 온유에게 보행기를 내주며 몇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온유에게 보행기를 주는 대신
온유가 가진 모든 장난감과 책은 버리거나 소명이와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온유는 밝게 웃으며 약속했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매를 맞겠다는 약속까지 얹었습니다.
온유는 그 후로 십 여분동안 보행기를 탔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급기야 대성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아무 재미도 없어.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아빠 엄마 말씀 잘듣고, 소명이 예뻐해줄거예요."
얼마나 꺽꺽 거리며 서럽게 울면서 후회하던지
준비해 두었던 매도 못들고 평화스럽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우리 눈 앞에 수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당장 그것만 손에 얻으면 만족할 것 같지만
우리를 만족시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육신에게 빚을 진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롬8:12)
빚은 갚아야 할 채무입니다.
우리는 육신에게 갚아야 할 채무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먹고 사는 행동을 그만두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먹고 살기만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으리라.
그러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 (롬8:13)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 받았듯
성령님은 우리를 구체적으로 인도해 내십니다.
육신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자녀이면 우리는 또한 상속자입니다.
상속자라는 것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상속하실 놀라운 영광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상속자이면 영광 뿐 아니라 고난도 함께 해야 합니다.
그 고난은 부채와 같은 것이 아닙니디다.
고난은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온전케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인내를 낳고, 단련된 인격을 낳고, 소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롬5:5)
성령님이 그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에
놀랍게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친근함
감미로움은 우리가 예배 때 부르는 찬양에서만
느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거친 삶 가운데서도 누려야 합니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청년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막연한 죽음보다 강한 것이
우리의 완고한 자존심과 고집과 체질과 습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을 때에야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