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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신대원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새로운 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작은 아주 평범한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나누려 합니다..

어느 월요일, 밀린 과제 때문에 도서관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
한켠에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누구지?'
과제 준비를 한참 하다가 바람이라도 쐴겸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쳐다보던 사람이 나를 따라 나왔습니다.
도서관 바깥에서 그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키보드를 참 빨리 치시네요?"
그 사람은 파마 머리를 하신 아줌마였고, 음학대학 박사과정이라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그 사람은 내게 박사과정을 도전할 것을 말했습니다.
하하. 자기보다 키보드를 빨리 친다고 박사과정이라니요.
나는 조금 당황했고 손싸래를 치며 사양했습니다.
공부하는데도 관심없고, 내 몸에 맞는 옷도 아니라는 그런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난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설명을 하시며
그 예로 자신의 간증을 들려주셨습니다.
학생이 아무리 유능해도 교수가 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혼자서 잘난척 해봐도 교수가 트집 잡아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학생이 아무리 무능해도 교수가 이끌어주면 그 과정을 걸어갈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무능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끌고 가시면 우리는 갈 수 있다. 이런저런이야기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 안에서 3년전에 알았던 미술학부 교수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인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헤어지며 교수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사과정을 한 번 공부해봐."
네? 당황스러워 하며 일주일 뒤에 교수님을 다시 만나기로 약속 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들어가려는데 예의 그 파마머리 아줌마를 다시 만났습니다.
아줌마는 내게 이렇게 인사합니다.
"이제 박사과정은 결정하셨어요?"

이게 뭐지? 수많은 개연성들이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길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박사과정 응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서둘러야 했습니다.
그 때부터 일주일간 기도하며 두 사람의 멘토에게 의견을 묻기로 했습니다.
우선 반대할 줄 알았던 첫 번째 분은 의외로 이 일에 찬성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 나라의 학교를 생각할 때 이 일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확증으로 두 번째 분을 만났습니다.
사실 신대원을 결정할 때도 마지막으로 의견을 여쭈어봤던 교수님이십니다.
만나서 2분 정도를 이야기 나누는데 하나님은 어느새 그 분의 머리속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분을 떠올리게 하셧습니다.
제가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하며 엘리베이터에서의 일을 이야기하자
깜짝 놀라시며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들려주시며 찬성하셨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찬성해도 정작 내게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국제통상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학부는 지금 졸업예정에 있는 신대원입니다.

양보해서 사진이 미술의 영역 속에 포함된다 할지라도
그 방향에 대해 공부한 전례가 없는 내가 박사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마치, '심심한데 토목공학과 박사나 한 번 따볼까?'
또는 '전자공학과 박사나 한 번 따봐야 겠다.' 이런 것과 별다를게 없는 차원입니다.
게다가 면접 때는 영어로 자격검증을 한다는데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바닥입니다.

이런 저런 두려움을 안고 교수님을 만나기로 한 월요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그 날의 큐티 본문을 가지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내가 내게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후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여인들은 그 분의 무덤을 향했어요.
이 짧은 본문에 세 개의 만남이 있었어요.

무덤지기와 천사의 만남,
여인들과 천사들, 마지막으로 여인들과 예수님의 만남.
모두가 갑작스럽고 놀라운 만남이었어요.

무덤지기는 천사를 만나
두려웠고, 죽은 자처럼 되었어요.
얼마나 두려웠을까?

천사들을 만난 것은 무덤지기 뿐 아니었어요.
여인들도 그 갑작스런 만남에 두려웠을 것예요.
하지만 천사는 여인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어요. (마25:5)

여인들은 이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러 달음질했어요.
그 길에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도 천사처럼 그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어요. (마25:10)

무엇을 선택하든, 어떤 상황을 만나건
우리가 주님과 상관없다면 우리는 그 상황에 압도되어
무덤지기처럼 두려워 죽은 자처럼 될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주님과 상관있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거예요.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해요.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요."

그리고 오후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내게 건낸 짧은 말은 나로 전율케 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내게 비젼에 대해 질문했을 때
내가 답하는 말과 거의 동일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계산과 예측을 넘어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확신이 들면
우선 순종하는게 우리의 몫이 아닐까?"

대화는 길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내 마음이 동의가 되었기에 
순종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이상 두려워 하지 않을것을 생각했습니다.
실패하면 어때? 내 몫은 순종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주님안에서 결코 실패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로 보이는 것 까지도 과정임을 잘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연성을 가지고 늘 내 인생 가운데 노크하신 주님,
주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이 후의 내 인생의 결과를 추론해낸 끝에
오늘 순종하겠습니다. 가 아니라
이후의 내 인생의 결과와 상관없이
오늘 순종하겠습니다.

둘은 똑같은 시도 같아 보이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게 인생이라 도중에 낙오도 할 수 있겠지요.
이 때는 둘 사이가 전혀 달라집니다.
결과를 추론하고 순종한 걸음은 실패는 결국 실패일 뿐이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오늘 인도하신 손에 반응한 걸음은
실패는 또 다른 인도하심으로의 연장이겠지요.

며칠이 지나
원서를 준비해서 접수할 때즈음 미국에 사는 누나로부터 문득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내게 꿈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언젠가 꿈에 너가 나온 이야기를 해줬잖아.
꿈에 너가 이스라엘에 서 있는 것도,
신대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도.'

기억을 더듬어 겨우 생각해 냈습니다.
내가 잊고 있었던 이유는
누나에게서 꿈이야기를 들을 당시에 내게 이스라엘은,
신대원에 대한 것은 전혀 관심밖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정말 꿈속의 내가 현실을 살고 있네요.
그리고 3년이 지나 졸업을 하는데까지 시간이 흘렀네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때처럼 누나에게 비슷하게 꿈 하나를 꾸게 하셨다며
그 때문에 안부전화를 한 것입니다.
꿈 내용은 이렇습니다.
로키산맥처럼 커다락 절벽에 화려한 색감들로 수놓은 그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막에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절벽들에 들러싸인채.
사진인지, 그림인지 알지 못하는 풍경에 서있는 나를 보았다고 합니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고민하고 결정한 터라,
가까운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꿈 이야기를 들려준 누나에게 조심스레 새로운 공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전공에 대해서는 자신이 맞춰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말하자

"혹시, 기독교 미술?"

아직 아무에게도 나누지 못한
비밀스런 정답을 바다 건너 땅에서 듣게 하십니다.


여러 해야할 일들이 겹쳐 있어서 마음이 급해
단순하고 거칠게 나누었습니다.

그저께 면접을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내 모습이 어색했습니다.
새로운 걸음은 늘 어색합니다.
며칠 뒤면 결과가 나오겠지요.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 여겨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시32:8 / 새번역)

여전히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면 '네'라고 대답하고 걸어가는 인생이겠습니다.
주님의 길이 가장 옳습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이루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