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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위안을 삼곤 합니다.
'나는 내 진심을 말했어.'
말을 잘 하지 못하던 내가 바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말이나 글로 다 설명하지 못할 경우에 스스로를 이렇게 위안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진심을 다 했어.'

그런데 언젠가 주님은 그것에 대해 '겸손하지 못함' 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나는 내 진심을 전했는데?

만일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는 과연 아버지의 마음을 한 마디라도 알 수 있을까요?
당신의 편한 방식을 따라 '신적 언어'로 말씀하신다면
나는 당신의 의미 한 조각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주님은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높이까지 내려오셔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절정에 우리가 성탄이라 부르는 성육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구유에 나신 예수님을 천사는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는 요셉과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145Km나 되는 먼 길을 여행하여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오셨습니다.
자신을 '신의 아들'로 칭했던 아우구스투스의 명 때문입니다.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후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 실제적으로 로마의 모든 통치 권력을 장악한 왕입니다.
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하지만 변방 동쪽에서 한 아기가 나셨습니다.
천사는 이 아이가 바로 구주라 말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제국의 사람들이 왕이라 믿고 섬기는 이와는 별개로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시간속에 역사를 이끄십니다.
아우구스투스의 명을 따라 굴욕적으로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으로의
긴 여정을 떠난것 같아 보이지만
이 또한 예언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것 같은 왜곡된 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를 따라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믿음은 구유에 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신 그로 말미암는 평화 만이 진정 우리를 살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