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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늦은 밤,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몇 년전, 타지로 떠났던 사람들인데
여러 아픈 일들을 겪고는
우리가 생각났다며 친정 오듯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서
좁은 공간에 11명이 바글바글 모였습니다.
반가움에 웃고 떠들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어 함께 손을 모았습니다.

요즘 내가 묵상하고 있는 말씀이 시편 50편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시50:21)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그 하나님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원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해 이신론(理神論)적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맞지만,
그 후로는 피조계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하나님..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이 결코 그 분의 무관심이나 무능력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세계를 이성으로만 판단하려는 사람들의 교만으로 만든 세계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엄히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시50:22)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하며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찢으시면 과연 누가 나를 구원하실까.
나는 이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생각하려 무진 애를 썼습니다.

아파하는 이들에게 도리어 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처한 각자의 사정과 아픔이 있겠지만,
하나님을 잊어서 겪게될 절망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식어지고 잊혀지는 것처럼 비극은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겪고 있는 아픔과 시대의 오늘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분의 일하심을, 그 사랑을 노래하고, 기도했습니다.

시편 50편에서 강조하고 있는 단어 하나는 '감사'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시50:23)
지난 한 해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셀 수 없습니다.
그 은혜를 함께 기도하며 나누었습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을 적개심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섬길 마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후배 하나가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얼마나 보배로운 고백인가요?
미워하는 마음은 우리의 본성이지만
그 마음을 따라 사는 대신,
주님 주신 마음을 붙드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우리는 선한 것 하나 없는 질그릇이지만
우리 안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예수님때문에
질그릇도 함께 빛이 납니다.

이렇게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주님께서 등 떠밀어 먼 길을 찾아오게 하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