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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가족이 있어 좋은 점은?"
"지금처럼 피곤하고, 나른할 때
전쟁을 마치고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는 느낌?
아내와 아이들의 냄새, 그 따스함.
집으로 돌아간다. 라는 말이 품고 있는 그리움.."
후배의 질문에 반쯤 잠든 대답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습니다.

늦은 밤도 넘겨, 새벽이 다 되어
매거진 <반창고>의 마감을 다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밤을 새고, 새벽 첫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 잠든 도시에서 우린 잠들지 않으려고
이런 달달한 질문과 답들을 끝없이 늘어 놓았네요.

나는 혼자였던 삶이 길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고시원생활과 자취생활을 한 탓에
혼자 지내던 삶이 그렇게 편했었는데,
이제는 남편으로, 아빠로의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기쁜 이유들을 꼽아보던 중
남편이 된 자격으로, 아빠가 된 자격으로
주님을 말할 수 있다는 기쁨이 컸습니다.

상상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달리기를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뛰어보는 것이 다른것 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청년의 시절에는
아내에 대해, 가장으로의 삶을,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이해하지도, 감히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삶에 대해 말하게 되면
나중에 '아니면 말고'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게는 모호한 것 투성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허투루 말한 부분은
살아가면서 자꾸만 수정해 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다 살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며칠전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장의 말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게 백 번을 물으신다면 백 번을 대답드립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내가 인생을 다 살지 못해서
무책임한 말을 쏟아낼 수 있지만,
인생을 다 살고 난 후 하나님을 만난다면, 또는 그렇지 못하다면
너무 늦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청년의 때에만 유효한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
가정 속에서도 여전한 믿음으로 존속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
주님이 여전한 주님이라는 당연한 사실.
이 평범하고도 당연한 사실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 새벽에도 여전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