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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석달간 머물던 마리아가 돌아가고
곧바로 엘리사벳은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웃과 친족들은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로 지으려 합니다.
이름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당시 가문에서의 이름을 따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요한이라 지으려 합니다.
그리고 사가랴 또한 서판에 글을 써서 요한이라 썼습니다.

문화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문화를 벗어나는 결정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시면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며칠전 있었던 나라를 위한 일일금식성회의 한 쪽 벽면에는
이 시대의 기도제목들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동성애자의 투숙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영국인 부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동성애가 이 시대의 다양성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는 시대 가운데
주님이 자신에게 주신 분명한 결단은 
시대의 위협 가운데서도 전통과 문화를 거스를 수 있습니다.

사갸랴는 말 못하는 열 달의 시간동안
어떤 마음과 생각을 품었을까요?
우리가 보고, 듣는 일상들은 생각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가 가진 스마트폰은 선교완성에 많은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하나님과의 일상적 대화를 교묘하게 방해하기도 합니다.
장인어른은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셨는데
언젠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지 못하는 것 또한 축복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늘 하나님께 집중하셨던 그 분에게, 보지 못하는 만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가랴가 외부적으로 말 못하는 시간동안
내부적으로는 이전에는 전혀 경험해보지도 못했던,
주님과의 친밀한 동행었을 것 같습니다.
자신과 아내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던 그가
서판에 요한이라는 이름을 적을 때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내리는 믿음의 결정은
하나님과 함께 지내며 갖게 되는 신뢰와 경험을 바탕으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사진 _ '포도원의 샘'이란 뜻을 가진 '엔케렘'(Ein Kerem)의 세례요한교회
예루살렘의 서쪽에 자리잡은 세레요한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