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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죄가 가리운 자는 복이 있나니'

다윗과 바울이 얘기한 이 짧은 말 앞에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당신이 죄를 가리워 주지 않았다면
나는 드러내어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젠가 하나님께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죄 하나를 지적해서 말씀하셨을 때
나는 당장 그 죄 하나의 값으로
한강대교에 뛰어내려 죽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죄인임을 알게 하셨다.
살던데로 살아가기에 모를뿐이지
하나님의 법 아래 우리의 모든 상태가 드러난다면
우리는 과연 숨쉬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내 안에 가리운 채 살아가고 있는가

세리 레위는 스스로 죄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세리라는 신분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는 이름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레위는 하나님이 기업인 거룩한 백성이지만
세리 레위는 그 무엇에도 발 붙이고 살지 못하는 박쥐같은 이름이다.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 레위를 부르셨다.
"나를 따라라" (눅5:27)
레위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스스로 경건하다 싶은 이에게는 사실 예수님이 필요없다.
그저 자신의 경건을 더할 선생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죄인에게는 다르다.
예수님이 세리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당시의 경건한 사람들이 비방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5:31-32)
스스로 건강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무의미하다.
내가 의롭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에게만 있다.

사람들의 평가를 떠나서라도,
세리 레위 자신이 보았을 때
그는 도덕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죄인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를 불렀을 때 그는 새로운 옷을 입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죄인으로 보았기에 비방했지만
말그대로 죄인이었기에 그는 예수님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동안 결코 놓지 못했던 것들을 단숨에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눅5:28)

누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는 모습을 기록하며 반복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표현같아 보이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이해하게되면 누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내가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리와 같은 죄인을 맞아들인 것보다도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만물의 창조주가 피조세계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이다.
이 시대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시대이다.
그저 놀라운 선지자 한 명이 등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나를 지으시고, 만물을 지으신 주인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묵은 포도주를 마시며, 묵은 것이 좋다고 여기지만, (눅 5:39)
새 시대의 주인이며, 결혼만찬의 주인공이신 신랑으로써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놀라운 사건앞에 그들이 버리고 떠난 모든 것은 결코 크지 않다.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_ 짐 엘리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