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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눅5:23)
둘 중 어느 말이 쉬울까?
우리가 생각하기에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이 더 쉽지 않을까?
물론 이 상황에서 둘 다 쉽지 않지만,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을 했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편보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모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
사실 내게는 어느 것도 쉽지도,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주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중풍병자는 누웠던 것을 가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모든 사람이 놀라 심히 두려워 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반응하기 마련이다.
나는 어디에 반응해야 하는가?

앞서 예수님은 당신의 소문이 더욱 퍼져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침을 받고자 모여 올 때
물러가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했다. (눅5:16)
병고침과 말씀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사실 예수님의 질문은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보다
죄에 관한 문제가 더 치명적이고,
이 일에 대한 해결이 더 쉽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다.
이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것이
모호한 영역이라고 방치해둔다면 영혼의 때가 다다랐을 때 그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지금의 현장에는 이스라엘의 각 지역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있다.(눅5:17)
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그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이유는
바로 죄와 죄용서에 관한 때문이다.
죄에 대한 것은 알지 못했다고, 잊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죄는 자주 나병으로 비유된다.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에서 철저히 격리되어야 하는 부정한 병이다.
누구에게도 다가설 수 없는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간청했을 때,
당신은 손 댈 수 없는 내 몸에 손 대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해져라." (눅 5:13)

예수님이 던지신 질문은 바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줄을
우리로 알게 하시기 때문이다.(눅5:24)

주님, 저는 나병환자 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세는 오직 주님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해져라."
주님이 제게 그렇게 손대시면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제게 그렇게 말씀하셔야지만 저는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