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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봄비가 내립니다.
그동안 고민하고 있던 한 가지를 결정했습니다.
토요일에 목사고시가 있습니다.
사실 목사고시는 목사안수를 위한 수순에 불과합니다.
신대원을 졸업할 때즈음 강도사고시를 보게 되는데
강도사 고시는 생각보다 까다로와서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약식이지만 논문을 써야 하고,
성경과 조직신학, 헌법, 교회사, 일반상식등을 공부해야 합니다.
주어진 본문에 대한 설교문을 작성하고, 설교강독도 시연해야 합니다.
저도 1년전에 집안 가득 암기 사항들을 적어 도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험을 합격하게 되면 나머지 과정은 수월한 편입니다.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게 되면, 1년뒤에 목사고시를 거쳐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절차상 여기까지 왔지만 고민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험자료와 설교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필요한 서류의 날인을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담당목사님들을 만나뵌 자리에서 유보할 뜻을 밝혔습니다.


목사안수를 받으면 내게 있을 유익도 물론 있겠지요.
그래서 함께 공부했던 동역자들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게는 아니라는 확신을 지금에서야 확인했습니다.
분별하는게 힘들었던 이유는
주변에서 함께 준비하는 동역자들과 관성을 따라 흘러왔을 수도 있을테고,
공부한 신대원 3년과 어렵게 치뤄낸 강도사고시에 대한
당연한 보상쯤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있게 될 특수목회에 대한 비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약3:1)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12:48)
이런 말씀들 앞에 나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주님이 내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네가 하는 일들이 안수를 못 받는다고 할 수 없는 것이냐?”
나는 우선 이 질문 앞에도 아무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신학을 마칠 때즈음 하나님은 저를 전혀 뜻밖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미술학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시작할 당시는 알지 못했지만 신학공부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명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삼하8:4)
다윗은 결국 통일 왕국의 왕이 되고, 그는 어디에 가서 싸우든지 이기게 됩니다.
그 승리한 기사의 한토막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기록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마병은 놀라운 기동력과 파괴력을 가진 전투력이었는데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은 말의 힘줄을 끊었습니다.
신명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시는 규례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지만, 마병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최소한의 마병만을 남긴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그냥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좋은 건, 주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부탁했던 분들에게 목사 안수를 받지 않겠다는 결정을 나누고,
몇 명에게 책망 아닌 책망을 들었습니다.
주신 타이틀을 왜 가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저를 생각해서 해주신 말씀임을 압니다.
하지만 나도 삶 속에서 말들의 힘줄을 끊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된 야곱과 식솔들은 자신들을 시기하는 라반의 낯을 피해 야반도주합니다.
하지만 라반은 야곱을 금세 뒤쫓았습니다.
라반은 자신의 드라빔을 찾기 위해 야곱의 모든 소유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의 정직과 억울함과 의로움을 토해내듯 쏟아냅니다.
드라빔이 자신의 아내에게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추지 않으셨다면 야곱의 이런 성취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야곱은 알지 못하지만, 라반이 떠나간 다음에
자신의 아내에게서 진짜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야곱은 정말 간담이 서늘할 것입니다.
어미의 태에서부터 살길을 궁리하고 모색했던 야곱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시는구나.’
이런 선택들 앞에 나의 의로움 또한 하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청년부에서 임원으로 섬긴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포기한 이유는 청년부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제 갈길을 찾지만, 맡은 자가 떠나버리면 공동체를 돌볼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리더쉽으로 또 다른 후배가 세워질텐데
후배도 똑같은 경우를 만나게 되면 공동체를 버려두고 떠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선배의 선택들은 후배들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나는 당시에 속으로 웃으면서
'영어를 배울 기회를 놓쳤으니 외국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해마다 외국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공항에 들어설 때마다 까마득한 이 날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해야 하지만,
주님이 나를 살게 하신다면 나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어떻게들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질문하신 분들에게만 따로 답변드릴까 하다가 장황하지만 그냥 이렇게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