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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나는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계획하고 살피는 편이 아닙니다.
허술하고 헛점많은 나에 비해 야곱은 무척 꼼꼼하고 주도면밀합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을 새며 근심했습니다.
수 십년이 흘렀다지만 형 에서를 속이고, 축복권을 빼앗은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형은 사냥을 좋아하는 거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 그 곳을 마하나임이라 이름했지만,
하나님의 권세가 지금 자신이 직면한 두려움을 씻을만큼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지역밴드 모임 때, 속장님 한 분이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했습니다.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께서 여전히 건설 현장에서 일하신다는 나눔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속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아파하는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때는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것 같지만
현실을 직면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 지곤 하는 것입니다.
그 날 밤, 속장님에게 따로 보낸 메세지가 있는데
일주일이 다 지날 때즈음 그 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 후로 계속 주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보낸 메세지는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야곱이 지금 직면한 현실은
자신에게 실망하고 분노한 에서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 아 이게 현실이구나.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시절입니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이런 풍경이지만
성경은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길 요청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주의 인자와 주의 진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말.'
여기서 인자라고 표현한 말은
'우리 할아버지가 인자하다'라는 것처럼 사용된 말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사랑, 신실한 사랑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헤세드'를 번역해서 우리 성경에 '인자'라고 표현합니다.
같은 의미로 '에메트'를 번역한 말이 진실입니다.
이는 기대어도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견고할 것 같은 것에 기대었다가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기대고, 부동산이나 돈에 기대어 보지만
그것은 견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는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 견고한 사랑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두려움 가운데 에서에게 보낼 많은 선물을 보냅니다.
선물이 아니라 조공에 가까울만큼 어마어마한 예물을 나누어 준비합니다.
이런 모습들이 믿음 없는 행동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우리는 이 또한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야곱은 두려움 가운데 이 일을 준비했지만
이 일들로 에서의 마음이 위로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부늘 그치게 하느니라" (잠21:14)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은 너무나 많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하다 블레셋 땅으로 도망했을 때
그는 아기스(아비멜렉)왕의 부하들에게 발각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문을 그적거리고, 침을 흘리며 미친척을 하여 가까스로 살아났습니다.
그는 이 일을 경험하며 시편 34편을 지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시34:4,7)
지금 다윗에게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가운데 
침을 흘리고 미친척 하며 수치를 감당해야 하는 암담한 현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런 것들을 감수해서 살아났고
이 일이 하나님의 구원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의 응답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 장면을 보다 현실적으로 각색해 본다면
다윗은 빚쟁이나 조직폭력배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데
자신은 다윗이 아니라고 침 흘리며 미친척 한 것입니다.
게다가 사울을 피해 도망나왔기에 이젠 돌아갈 집도 없습니다.
지킬 만한 자존심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상하면 한동안 헤어나오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다윗은 자신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두려움에서 건지시며 천사가 자신을 둘러 진쳐서 구원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크신 구원을 노래했지만,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온 회중은 모세를 향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된다.'고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한 현실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원망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출16:8)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은 직면한 현실에 대한 원망을 했지만
그것은 현실에 대한 원망도, 모세와 아론을 향한 원망도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었습니다.

반대로 다윗이 오늘 드린 감사의 고백은
현실 속에 일어나는 처절한 아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경험하며
그 속에서 놀라운 주님의 인자와 진실을 발견하고 드리는 고백입니다.

"여호와는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시34:18)
주님은 예배 가운데 말씀하시지만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도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상해 있다면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어 보세요.
이 공기의 밀도보다 더 세밀하게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