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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참 놀랍습니다.
나중에 구체적으로 알려드리겠지만
개인전시회가 잡혀 있습니다.
이번에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입니다.

그래서 이른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기도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습니다.
그림을 그리게 하시는 과정을 생각하면 말이 안나옵니다.
이제 물감을 사고, 붓을 사고, 재료를 사고
아직 재료를 잘 알지 못해서
화방 점원을 붙들고, 이것 저것 물어보는 수준입니다.
작품들이 제대로 완성되기도 전에 전시회가 잡혀있다니요.

하지만 하나님이 제게 하신 많은 일들이 이런 수순이었습니다.
글도, 말도 익숙치 않던 제게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으로 언어를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결코 작가를 꿈꾼적이 없습니다.
'나는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할까.'
이 물음으로 내 인생을 회의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사랑해서,
당신이 이끄시는 걸음을 걸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것을 깨달았다면
내 자녀에게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율배반적이며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녀들을 방임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다양성 가운데서
하나님이 각 사람들에게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스무살 언저리가 되면 대학을 가게 됩니다.
그 때까지도, 그 후로도 자기 길이 열리지 않더라도
만일 아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 가운데 있다면
그것은 옳게 가는 것입니다.
느려보여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에게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으며, 다윗이 그랬습니다.

부모에게 아이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아이를 위해 부모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사울왕은 블레셋의 위협 앞에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전쟁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삼상13)
왜냐하면 사무엘을 더 기다리다가는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다고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이겨야 했고, 자신의 백성을 지켜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오해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무관심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 인생을 위해, 아이를 위해 전쟁하면서
마치 하나님이 내 인생에, 아이들의 인생에,
그리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무관심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울은 당장 그 전투에서는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무엘은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임금님의 왕조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할 것입니다"(삼상13:14)

사울왕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백성이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주님께서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 말씀하신다면
블레셋의 위협앞에서도 기다리는 것이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항상 옳으실 뿐 아니라, 계획하시고
또 당신의 계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