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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야기

 


 


 


그림을 그려볼 양으로
노트에 연필을 가져다 대는데
친한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조용한 시간이라 핸드폰 알림에 놀랐는지
노트에 연필로 딸국질을 그려 버렸습니다..
 
선배는 정기적으로 쉼터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합니다.
무척 바쁜 일주일을 보내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하루를 확보해 내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 그 아이를 입양 할까 싶어요."
언젠가 선배가 내게 들려준 말입니다.
그 아이는 흔히 예쁘고 착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몰래 누군가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노숙자를 두들겨 패고는 그걸 좋다고 동영상으로 찍어와서 보여주는,
무엇이 옳고 그런지도 모르는 치기어린 철부지를 보며
선배는 '이 아이를 자기가 입양할까.' 한참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친구와 선배들이 내 곁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붙여준 소중한 풍경입니다.
말로만 전해 들었던 아이를 조금 후에 만나게 됩니다.


"가장 자신있는 웃음을 웃어봐."
아이들의 웃음을 가득 담아 주려고 합니다.

어제는 가만히 기도하는데 내 영혼의 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두려움 투성인 오늘을 살면서 내 마음이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놀랍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오빠는 요동하는 모습을 못 봤어."
아내가 내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사실 내 마음이 아파서 진물이 날 때도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반응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가 봅니다.
'나는 나에게 절망합니다.' 라고 주님께 자주 말합니다.
내게 가장 감사한 시간을 꼽으라면 바로 그 시간입니다.
나에게 절망했던 바로 그 시간.
내가 완전히 절망한 후에 나는 주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
보혈이 나와 어떤 관계인지,
주님의 은혜가 내게 얼마나 큰 지를 비로소 조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에게 절망한 후에야 평범한 일상이 감사로 가득차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후에 만날 아이들은
아직 어린 아이들인데도 불구하고 절반은 절망한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가 누구인지를
바로 전하기만 하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로 자라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침 시간을 조금 떼어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이라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연필로 그적그적 그리고 있는 정도입니다.
나는 20년전에 미술을 하고 싶었습니다.
실력이나 재주도 없어서
전공하고 싶다라기 보다는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내 생각과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수능시험을 치르고 혼자서 미술학원에 등록하려 했습니다.
학원비가 비싸서 너무 쉽게 포기했는데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작년말에 사진전을 위해 이곳 저곳을 사진 찍다가
우연히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시는 집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틈에 껴서 같이 그리면 안 될까요?"
아주 가끔씩이지만, 나도 그 틈에서 원기둥도 그려 봅니다.
혼자서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는
사진을 찍어 숙제를 제출하듯 메세지를 보내곤 합니다.
집사님은 한결같이 응원하십니다.
누군가의 격려나 응원을 받는 것은 신이 나는 일입니다.

쉼터 아이들의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몰래 숨겨둔 소원도 하나쯤 있을텐데
또래에게 영향을 받아 폭주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린 이미 망한 인생이니, 망한 것처럼 살자고 생각지는 않을까.
인생이라는 꽃은 생각처럼 쉽게 피는 것도, 그렇다고 빨리 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신들을 응원하는 목소리,
아이들의 작은 웃음이면 오늘의 과제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
가장 자신있는 웃음을 웃어봐."
아이들의 웃음을 가득 담아 주려고 합니다.